한 여름밤의 가든 결혼식, 적고 보니 제법 마음에 든다. 토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있었던 농장에서의 축제를 한 마디로 뭐라고 할까 하다가 생각난 제목이다. 열 시가 되기 전에 슬그머니 빠져나오긴 했지만 잠시 다른 세상에 있다가 나온 듯 많이 아쉬울 만큼 좋았다. 그곳에 더 머물고 싶어서. 축제에 가게 된 연유는 예전에 글에도 쓴 적이 있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만난 외국어 선생님 덕분이다.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시는. 워낙 아이를 예뻐해 주셨고 지금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분. 이번 학기 방과 후 수업으로 골프를 시작한 딸이 너무 잘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실만큼 각별하다. 두 달 전 6월,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서 주셨던 초대장이 바로 이거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어? 농장에서 3일간 노는 거네', 하면서 별 감응 없이 잊었던 초대장이다.
까맣게 잊고 있는 일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고 며칠 전에 전화를 주셨다. 남편하고 의논해보겠다고 하면서도 실은 갈 마음은 없었다. 같은 날 브레멘 음악 축제가 있어서 거길 가고 싶어서. 금요일 첫날을 다녀오신 선생님은 다시 전화를 주셨다. 너무 좋았노라면서. 200명이나 왔는데 얘들이 엄청 좋아할 거라고. 독일 사람들이 그렇게 뭘 간곡히 권하질 않는데 우리에게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 좋은 걸 함께 하고픈 마음에 여러 번 말씀하시는 거겠구나 싶어서 갔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찾아간 곳은 시골 농장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차량뿐 아니라 수많은 자전거의 행렬을 보니 엄청 큰 행사라는 걸 알겠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축제다.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가 충분한! 대부분 큰 규모의 축제는 한 장소에서 시간별 다양한 공연이 열리면 발길 닿는 데로 끌리는 대로 보면 된다. 이날도 그랬다. 가든에 세 곳의 무대가 설치되었다. 정원에 무대를 설치할 정도면 얼마나 큰지 대충 감이 올 거다. 작은 무대들이 한눈에 보이고 한쪽엔 뷔페로 음식을 쭈욱 갈아놓았다. 맥주는 1유로만 내고 머그컵을 사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고 잔은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공연을 즐기다가 배를 채우고 대화를 나누는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동선은 적당하고.
우리가 운이 좋았던지 깜짝 이벤트로 축제 중간에 주인 부부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독일은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 부부도 그런 케이스란다. 남매는 엄마, 아빠의 결혼식에 노래를 근사하게 불렀다. 결혼식은 지인들의 준비로 이뤄졌는데 순서 자체도 창의적이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그런 형식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부부가 함께 하나의 앞치마를 메고 가상의 부엌을 만들었다. 선물 상자에서 천에 그림으로 그린 냉장고 식탁 등의 가구들을 하나씩 꺼내 배치한다. 어떤 이는 장미로 장식된 하트 초콜릿 케이크를 전달하고 신부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린다. 부부가 진한 입맞춤을 하며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낼 땐 더 이상 젊지 않은 부부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일상을 함께 보내며 세월을 쌓은 지인들과 그날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순간을 만든 거다. 마지막으로 신랑은 결혼식에서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다며 건배를 외쳤다.
결혼식 주인공도 모르는 한 다리 건너 초대받은 외국인이자 타인이지만 여유롭게 즐기는 분위기를 보면서 그게 또 독일 생활 깊은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만 초대해서 은밀하게 진행하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축제를 만든다. 협업으로 조금씩 할 일을 분담하면 누구 하나 희생하거나 힘든 사람이 없다. 결혼식을 올린 주인장의 가든에서 3년마다 축제를 한단다. 선생님도 다음 축제를 보려면 3년을 기다려야니 꼭 오란거였다. 3년이라는 주기도 왠지 적당해 보인다. 나와 일상을 공유한 지인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흥에 취한 건지 맥주에 취한 건지 어둠이 조금씩 내릴수록 열기는 더 뜨겁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마지막 밴드 공연이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선생님이 실수로 잘못 주신 3년 전 초대장을 보니 삼 년 젊은 부부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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