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6일에 쓴 글
소망 없는 불행의 원제인 독일어 Wunschloses Ungluck의 단어를 살펴보면 Wunsch(소망) los(잃는, 없는) Ungluck(불운, 불행).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은 '여자로 사는 삶'이 운이 없다거나 혹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엄마에게 부과되는 책무가 많아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때도 있고.
한트케의 엄마에 대한 글을 읽으며 한 인간에 대한 감정을 제거하고 심히 이성적이라는 느낌이다. 과연 자신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옮긴이의 글을 읽고 아하! 했다. “소망 없는 불행은 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써진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중략) 이 작품의 서술 방식에서 독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감성적으로 몰입하려 하는 자신을 작가로서 엄히 다스리면 글쓰기에 임하는 한트케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치열한 작가 정신은 있겠지만
감히 누가 여자의 일생을 말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엄마의 삶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화자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객관적 시선은 불가능하다. 엄마에 대한 애정조차 느낄 수 없어 회색빛이다. 유럽의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 날씨를 이 책 전반에서 느꼈다. 문화적인, 시대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작가 의식이 투철한 한 인간이 써 내려간 글이라는 걸 읽는 내내 자각했다. 그렇다 해도 여자의 일생에 대한 그리고 엄마로 사는 삶에 대해 섬뜩한 혹은 안타까운 면들 뿐이다. 은유 작가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배우지 못한 엄마, 외로워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찰하고 기록한 실험적 글쓰기. 아들이 말하는 엄마의 삶. 아들인 자신이 엄마의 삶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객관적 시선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소망 없는 불행은 언어 없는 불행이다.”
나의 엄마도 많이 배우지 못했고 자기만의 언어가 없었음을 감히 추측해본다.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최소한의 시간도 지켜보지 못했다.
딸들은 모두 엄마가 되었다고 해도 엄마를 모른다. 첫 아이를 낳고 엄마의 다섯 번의 출산의 고통을 감히 헤아려보려 했고. 둘째아이 딸을 낳고 감격의 기쁨도 잠시, 이 아이도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딸의 먼 미래의 고통을 미리 걱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출산의 고통은 죽을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했다. 하나를 키울 땐 하나라서 첫 경험이라서 어설펐다. 둘째 아이는 둘이라서 힘들고 고달팠다. 친정엄마가 없어서 서러운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고. 그때마다 내 기억 속에선 찾기 어려운 '엄마'라는 존재를 막연히 떠올렸다.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에게 남겨진 다섯 딸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겠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종교는 초월했고 춤을 추면 낫는다며 춤선생을 집안으로 들였다. 서른 일곱 꽃다운 나이에 죽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 곧 걷기 시작하고 엄마를 알아보며 방긋방긋 웃는 막내딸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그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자라면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란 막내딸이 얼마나 욕심이 많으면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단 말인가. 몸도 그리 약한 여인네가 첫 6년간은 2년마다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어찌했을까. 시대 상황도 한 몫했겠고 장남의 며느리라는 위치도 무시 못했겠지만 누구 때문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포기하지 못해서 괴로운 날들을 감히 누가 짐작이나 할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 오는 결핍감은 얼마나 클까. 지금 나는 그저 상상 속의 엄마일 뿐이고 엄마 분신인 다섯 딸을 보면서 그녀의 삶을 추측할 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특히나 엄마의 부재로 자녀들에게 남겨진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저 원망만 할 수도 없다. 다섯 째가 아들이 아님에도 낳아주셔서 감사한다. 한 여인의 서른 일곱해의 삶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망막하다. 그녀의 삶을 알 길이 없어서 불행하다. 성실하고 자상하지만 딸린 동생이 많아서 늘 시끄러웠을, 12형제의 장남인 남자와의 결혼 생활은 과연 무난했을까. 사랑은 했을까. 사랑은 받았을까. 그녀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들을 낳는 일은 아닐지언정. 그녀가 산 마지막 12년, 출산과 육아로 채워진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죽음을 앞두곤 그녀의 진짜 소망은 발견했을까. 그러기엔 그녀의 생이 너무 짧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38년. 엄마 없이 내가 산 까마득한 세월. 엄마 없이 산다는 것이 아이에겐 어떤 일일까. 아이 곁에 오래 머문다. 일곱 살이 되고 열한 살이 된 두 아이에겐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세월. 한 인간에게 엄마가 필요 없는 때가 과연 있을까. 엄마란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자주 묻는다.
소망이 없어서 불행한 걸까. 불운해서 소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되는 걸까. 은유 작가의 말대로 나만의 언어를 갖게 되면 좀 덜 불행해질까. 나의 삶을 내가 아닌 타인이 대신 말하지 못하도록 나만의 언어를 나만의 세계를 심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책이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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