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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나이 듦

 

나이 들어간다는 건 서서히 스러지는 것. 튤립은 활짝 핀 것보다 봉오리가 예쁜 꽃이다. 봉오리로 있다가 활짝 핀 시간은 하루도 못 간다. 그러다 꽃잎이 떨어지면 초라하다. 그토록 매혹적인 장미도 눈발이 날리듯 꽃잎이 떨어지면 애잔하다. 떨어진 꽃잎들은 천덕꾸러기가 따로 없다. 잎이 날리기 전 어떻게라도 예쁘게 보려고 장미를 잘라서 접시에 모셔두지만 하루를 못 넘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 건 한계가 있다. 꽃잎이 시들고 활활 타오르는 촛불이 일순간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참 많이 닮았다.

 

내 몸도 서서히 늙고 있다는 걸 일 년 전 사진을 보면서 절감한다. 그땐 몰랐다. 딱 일년만큼은 젊은 모습이란 걸. 지금 이순간이 내가 사는 동안은 가장 젊은 날이다. 딸아이의 보드라운 손이 떡두꺼비 만한 손으로 자랐다. 내 키를 훌쩍 넘은 큰 아이를 보면서 나이 듦을 실감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자라는 속도로 나는 늙어간다.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은 기쁨이지만 나이듦은 슬픔이다.   

 

눈이 가장 쉽게 피로하고 침침하다. 흰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작년부터 뽑기를 포기했다. 생리혈은 매달 조금씩 줄어든다. 중형의 생리대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스트레칭을 하루라도 거르면 등이 아파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 운동은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친구와의 독일어 대화를 위해 할 수 없이 오후에 마신 커피로 밤새 뒤척인다. 저녁을 과하게 먹은 날은 속이 부대끼고 기분이 나쁘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고기를 멀리하고 식물성 식습관을 유지하는 건 질병을 최소화하고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한다고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도 없고 죽음이 피해갈 수 없다. 우린 누구나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오늘'이라는 찬란한 디딤돌을 딛고 나아가는 건 아닐까. 죽음과 세트로 암이나 치매를 떠올리면 무섭고 우울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 나이 듦이란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거부하지 말고 사그라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여 가는 게 아닐까. 소멸되는 과정을 순조롭게 잘 겪으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 수월할까. 가장 슬픈 단어 중 하나가 나이 듦일지라도.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닐 거다. 꺼져가는 젊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아직 명료하게 찾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지 않으면서 여유롭고 충만해지는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