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어느 순간 곤욕스럽다. 어떤 것이든 자신이 신앙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아하거나 믿는 걸 무턱대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독서든 글쓰기든 신앙이든 여행이든 식물성 식이요법이든.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은 누군가 억지로 강요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니까. 다른 영역도 분명 마찬가지일 거다.
브레멘에도 한인 교회가 몇 개 있다. 그중 한 곳을 서너 번 방문했다. 한국 사람이 그리워지면 가끔 가는데 그 주기가 난 한 일 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매년 교회에 인사차 방문하는 걸 보면. 한국에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던 청년 시절에 내가 좋아했던 성결교회 목사님이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이셨는데 내가 독일에 오면서 괜찮은 교회 추천을 받았다. 그 목사님을 직접적으로 소개받은 건 아니고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들 통해 통해 알게 되신 분이다. 여전히 그분과 연결되어있는 셋째 언니를 통해 소개받았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하길 바라는 언니가 부러 알아본 거다.
3년 전 맨 처음 방문했을 때 인상도 어찌나 좋으신지.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목사님과 사모님이셨다. 첫 만남에서 사모님과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면서 급속도로 친밀해져서 그 후에 한 번 더 만났을 때 우리 둘 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좀 놀랬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 유형은 이렇다. 신앙적으로 치우치지 않으시되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질문하시는 선한 사람. 그분이 딱 그러셨다. 사모님은 첼로로 독일에서 전공하셨는데 포근하고 다정하셨다. 그 이후 일 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할 때마다 주일 출석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저 반갑게만 맞아주셨다. 자주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시면서. 우리가 집도 멀거니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니 당연히 오기 힘들다는 걸 이해해주셨다.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앙이 없는데 사람 만나려고 교회에 나갈 수 없어서 당연히 안 갔다. 그런데 타지 생활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믿지도 않으면서 기도해주시는 건 받고 싶은 모양인지 어려운 시기에 기도 부탁을 했고 기도 덕분인지 고비마다 잘 넘겨서 지금껏 살아왔다. 작년 여름에도 남편이 직장 이동으로 어려울 때 찾아뵈었는데 그 이후에 따로 집에 초대하셔서 한식으로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그 한 끼의 감동이 꽤 오래갔다. 어떤 사심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진심이. 그러고도 일 년을 아무 연락 없이 보냈다. 마음 한구석엔 형편이 좀 나아지면 식사대접을 꼭 해야지 하면서 벼르고 있었다. 남편이 8월부터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했고 아이들도 개학하기 전에 인사도 드릴 겸 다시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뒤셀도르프로 교회를 옮기셨단다. 그렇게 서운하고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일 년간 전화 한번 드리지 못한 게 너무 죄송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너무 반가워하셨다. 마침 10월에 셋째 형부가 쾰른에 오시는데 그때 퀄른 옆 동네인 뒤셀도르프에 갈 수 있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본인의 집에서 하루 묵어도 좋으시다면서.
2년 만에 예전에 엄청 친했던 언니와의 통화를 힘겹게 끝내며 이제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내가 충성했던 교회에서 영혼의 단짝처럼 친하게 붙어 다니던 사람이다. 그 언니와는 내가 결혼을 하면서 멀어졌다. 신앙이라는 공통 관심사 외에도 우리 둘을 묶어주는 관심사는 꽤 많았다. 성격은 완전 반대였지만, 그 다른 점에 서로가 끌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졌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신앙이 없어지면서다. 결혼과 비혼이라는 점도 멀어진 이유 중 하나일까.
신앙 안에서 동고동락했던 사람은 이상하게도 거길 벗어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친밀함을 이어가지 못한다. 16년간 헌신했던 교회에서 얻은 건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그 안에서도 위에 언급한 목사님과 사모님 같은 전도사님이 계셨다. 신앙이 중심이되 인간이 가진 다양한 면을 이해할 때 신앙밖에 있는 사람과도 소통하지 않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 안에 있을 땐 누구보다 독선적이고 절대 신앙을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나만 알고 그 외에 것들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살았던 시절들. 지금도 혹시 그런 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절대 신앙 인양 무턱대고 신봉하면서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하는 분별없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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