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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나는 왜 쓰는가

 

글을 쓰게 된 계기/글쓰기가 삶에 미친 영향 및 변화/ 무엇을 쓸 것인가

 

 

신앙 같은 글쓰기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2020년 현재, 습관처럼 쓴다. 한때 열심히 매주 출석하던 교회생활처럼. 예배당에 들어가면 익숙한 분위기와 친밀한 사람들. 경건해지는 분위기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신앙이라 믿었던 그것. 교회 안에서 만나는 지인과 내가 맡은 역할이 만족스러웠다. 유치부와 초등부 교사나 청년부 임원을 하면서 봉사하며 인정받으며 깊이 몰입했다. 그 안에 있으면 노아의 방주처럼 맹목적으로 안전하다 느꼈다. 어떤 어려움도 함께 공유하고 서로 기도하면서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고. 서로를 알게 모르게 응원했다고 믿는다.

 

그때의 신앙이 지금은 글쓰기 같다. 쓰는 순간 예배당에 앉아 눈 감고 기도하던 때처럼 내게도 고요함이 찾아온다. 뒤죽박죽 엉킨 생각과 일상을 쓰며 성찰할 때 안정감을 얻는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쓴다. 글을 써서 꼭 뭐를 이뤄야겠다는 욕심이 사라지니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쓰는 과정에서 충만한 만족감을 얻는 건 맞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못 견딜 때(불행과 결핍이었다면)도 썼고 엄마로서의 본분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도 썼다. 아이의 사랑스러운 순간을 붙들어 놓치지 않으면서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했다. 독일이라는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쓰기는 꽤 든든한 동반자다.

 

일기 수준의 글은 늘 썼지만 글쓰기 모임에 합류해서 적극적으로 쓴 건 큰아이가 두 돌 때니까 대략 10년 전쯤이다. 정예서 선생님이 운영하는 <함께 성장하는 연구소 :함성연> 1기로 백일 간 매일 주어진 주제로 쓰며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 만남의 시작은 특이하게도 경매 공부를 하면서다.절대 양육 기간을 아이 곁에 있으면서 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할 때 경매에 도전했다. 싫어하는 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려면 일정 수준의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싶어서. 글쓰기를 모를 땐 새벽마다 경매 관련 공부를 했는데 그때 구본형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알게 되면서 내 안의 글쓰기 욕망이 있음을 발견했다.

 

<함성연> 스승님이 날 예뻐하시고 나의 강점인 진솔한 글쓰기를 칭찬하셨다. 젊은 엄마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는 저자가 되길 바라셨다. 그때는 책을 내는 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날 응원하는 스승의 기대도 저버리고 싶지 않고 열심히 쓰는 내게 누군가 언제 책 나오냐고 물으면 당당히 대답할 결과물이 필요했다. 순진하게 '프로 골퍼'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설가 장강명의 말대로 취미로 글 쓰는데 꼭 작가가 돼야 하나 의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난 프로골퍼가 되려고 몸부림쳤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서 불행했다. 독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게 독립출판이다. 10년간 썼던 글을 어떻게라도 종지부 찍고 싶은 마음으로 기대치를 대폭 낮춰 만든 결과물이다. 첫 책 이후엔 필력 향상을 목표로 썼다. 지금은 이걸로 첫 책보다는 낫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든다. 아이러니한 중독이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2010년엔 <함성연>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매주 한 편의 메일을 몇 백 명에게 발송했다간간히 독자 편지를 받았는데 감동적이면서도 신선했다. 글 쓰는 맛을 느꼈다고나 할까. 출판해서 내 책의 독자 편지를 받고 답장 쓰는 삶을 동경했다. 지금은 뭐라도 쓰지 않으면 내 존재감이 증발할까 봐 쓴다. 안 쓰면 불행하고 쓴다고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내 자원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 믿기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며 쓴다. 지난 10년간 쓰면서 깨달은 건 경매 공부를 하면서 부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 포기했던 것처럼 글 써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도 비슷했다부자는 보통의 절박함으론 불가능하고 저자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하나의 물건(반지하 빌라)을 겨우 낙찰받고 작은 월세의 수입을 창출하면서 절감한 게 부자 되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든 일인지 체험했다. 경매에 도전할 때와 다른 점은 보상이 없어도 계속할 수 있는가 여부로 갈린다.       

 

글쓰기가 삶에 미친 영향 : 치유, 밝음, 안정감

 

상담 공부하면서 혹은 상담을 받으면서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쓰면서 해갈되었다. 내 속에 화석처럼 굳은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자기 연민까지. 써서 말린 만큼 과거의 어떤 사건이 현재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지난 슬픔으로 인해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얻은 두 개의 닉네임은 '햇살처럼' '웃음꽃 유진'이다. 그늘진 내 얼굴이 쓰면서 햇살처럼 점점 더 환해지고 밝아져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자의식을 벗어던질 만큼 환하게 웃는 얼굴 뒤에는 사람(가족)과 글쓰기가 6 4 비율쯤 될 거라는 거. 글쓰기 첫 스승님도 당연하게 "유진이는 글 쓰며 살아야지" 하셨다. 자기 이해를 공부할 때 가장 나다운 장면 중에 발견한 '쓰는 삶'은 반갑다.

 

무엇을 쓸 것인가

 

예술적 자아 글쓰기와 주제가 있는 글쓰기는 물론 다르다. 모닝 페이지를 쓸 때처럼 속에 있는 날 것을 꺼내 쓰는 걸로 나와의 대화쯤 되겠다. 어쩌면 self 상담이 일어나는 순간. 일차적으로는 내가 무슨 생각 그리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보는 거다. 그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를 들면 지금 현재 갖고 있는 고민들을 해소하는 작업. 스트레스 요소를 써보는 것만으로도 정리가 된다.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고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자각한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도 한다. 작가 은유 말대로 쓰는 삶 이후 확실히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 조지 오웰이 추구했던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적으로 승화할 자신은 없지만.

 

주제가 있는 글쓰기는 또 다른 문제다.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독자를 염두한 글은 힘들지만 성취감은 있다. 좀 더 완성된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의도하고 내가 본 세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된다. 매번 너무 뻔한 글만 쓰고 있다는 자각. 브런치 연재를 쉬는 이유다. 새로운 시선으로 낯설게 보기가 안 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휘발되어 예전만큼은 아니다. 타성에 젖고 절박함이 결여된 상태. 현재는 신나게 쓸 수 있는 주제가 뭘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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