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부활절은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휴일이다. 올해는 4월 12일이 부활절이었고 예정대로라면 부활절 주일 앞 2주가 애들 방학이었다. 정원에 색색의 달걀을 미리 걸어놓으며 부활절을 준비한다. 마트에도 성탄절엔 산타 할아버지 모양의 초콜릿이 지천이고 부활절엔 토끼와 달걀이다. 우리 집 남자가 사 온 토끼 모양의 초콜릿과 피터가 내게 준 부활절 선물이다. 마리타가 살아계실 적엔 이때마다 애들 선물을 늘 챙기셨다. 선물은 그게 뭐든 받으면 기분 좋으니까. 남매는 신난다. 기대하지도 않은 선물을 피터에게 받고는 고맙고 죄송했다.
3월 마지막 날은 마리타가 죽은 지 일주기 되는 날이다. 피터는 그날도 일을 한다고 했다. 독일 사람들은 일주기에 뭘 하는지 궁금해서 친구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가족끼리 모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단다. 정원에 심은 마리타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렸는지 싱싱하고 푸르게 자랐다. 피터는 마리타가 없이 산 지난 일 년간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마리타의 말대로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듯했다. 그래야 슬픈 생각이 비집을 틈이 없을 테니까. 일을 쉬는 주말엔 웬만해선 집에 있지 않는다. 마리타의 부재를 달랠 방법 중 하나는 피터를 잘 챙기는 일인데 그동안 무심했다. 가끔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 드리면 그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했다.
피터에게 이사하기로 결정한 일을 전했을 때 안타까워했고 집 구했다니 피터도 우리가 떠나면 이 집을 팔고 다른 작은 집으로 옮길 거란다. 슬픈 소식이다. 이젠 이곳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은 식사를 준비해야겠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몇 주가 남았는지 헤아려 보니 앞으로 백일 남짓 남았다. 최소 열네 번 정도는 피터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겠다. 어제 가장 뿌듯한 일이 바로 그것. 토마토 계란 볶음에 흑미밥을.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갓 꺼낸 음식을 가져다 드렸더니만 접시를 받으시더니 따뜻한 음식!이라고 외치셨단다.
메뉴가 뭐든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 그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나를 위해 누군가 온기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것. 마리타는 매일 저녁 일터에서 돌아오는 피터를 기다려 저녁을 먹었다. 28년 동안 함께 한 의식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짓고 기다리는 사람과 함께 마주 보며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말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걸 내포한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인스턴트 음식을 쓸쓸하게 렌즈에 돌려 먹을 때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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