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갈 동네에서 딸이 다닐 학교가 정해졌다. 독일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4학년 C반이란다. 작은 마을이라도 서너 개의 초등학교 중 골라야 했는데 어디가 괜찮은지 기슬라가 정보를 줘서 결정이 쉬웠다. 기슬라는 남편이 현재 살고 있는 에어비앤비 주인.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큰 목소리만큼이나 호탕하고 유쾌해서 나이 드신 분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라고 느꼈는데 우리 가족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계약한 집 정보도 알려주고 잘 되길 응원하고 마스크를 가족 수만큼 직접 만들어주셨다. 남매 학교도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셨고.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출가한 아들한테서 보드 게임(Rummikus)을 우편으로 받아서까지 선물했다. 초등학교 이상 애들 있는 집에서 함께 했을 법한. 독일의 전통 게임 같다. 애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과 나의 독일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는데 안 할 수가 있나. 머리 쓰는 게임은 별로인데 할 수 없다. 아무래도 큰아이가 제일 잘하고 유리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알파벳 수로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완성된 단어를 구성한 알파벳 수가 바로 점수. 난 사전까지 옆에 끼고 열공 모드. 순발력을 갖고 이리저리 단어를 만들어야 해서 생각보다 엄청난 집중력이 요한다. 놀이라기보다는 학습에 가까운 게임인데 요행을 바라기 어렵다.
기슬라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사 갈 곳의 세팅이 착착 진행이다. 집주인에게 필요한 서류를 전하는 날, 이웃인 김나지움 선생님도 남편에게 소개해주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면서 주변 학교 목록을 메일로 보내왔다. 도움의 손길이 여럿이라 든든하다. 집이 구해지면 그다음 학교 정하는 일은 수월하다. 현재 노트 혼의 김나지움에 메일을 보내 둔 상태다. 학교에서 오케이 사인이 오면 현재 다니는 학교에 전학 갈 학교와 이사 갈 집 주소를 알려주면 된다. 서류 전달은 학교 간에 알아서 해준다. 딸의 초등학교 교장은 굉장히 호의적인 메일을 보내왔다. 작년에 한국의 교대생이 실습을 왔다면서 우리 가족을 환영한다고. 4C반이 될, 현재는 3C인 반 친구들 사진과 함께.
슈토프가 워낙 작은 동네라 김나지움은 없어서 아들은 어차피 옆동네로 다녀야 한다. 학교 버스 타고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슈토프 양쪽으로 벤타임과 노트 혼이 접해있는데 알고 보니 슈토프에 사는 사람은 벤타임 학교로 가야 한단다. 문제는 제2 외국어가 불어, 라틴어, 네덜란드어. 1년이나 배운 스페인어를 접고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우려면 기초를 따로 공부해야 한다. 니더작센주 안에서 이사라 제2 외국어는 다 같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가보다.
이사 간다는 내게 피트가가 행운을 빈다며 해준 말, Neues Spiel, neues Glück. 새로운 놀이를 할 땐 다른 방식에 따른 다른 운이 필요한 것처럼, 이사가 또 다른 혹은 많은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란다. 하긴 의외의 조커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짓게 될지도. 오누이가 학교에서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즐겁고. 우리 부부도 통하는 이웃을 만나 마음을 나누며 지금처럼 일상을 잘 유지한다면 바랄 게 없겠다. 이사 가기 전부터 여럿 도움에 환영한다는 말을 들으니 기대감도 생기고 실감 난다. 이제부터 할 일은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떠날 곳의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겠다. 사람이든, 장소든, 물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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