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책장을 정리하는데 <부모님 전상서>라고 쓴 파랑 색종이를 접어 만든 봉투가 툭 떨어진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여러 번 꾹꾹 눌러 접은 연초록 색지 위 남편의 필체다. 그것도 2018년 11월 19일이라는 날짜가 또렷한. 남편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딸이 혼자 뭔가에 몰두한 틈을 타 부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 자기 마음이나 달래려고 쓴 모양이다. 특별한 내용 없이 그저 담담하게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형식적인 내용. 편지 시작과 끝에 반복적으로 쓰인 <보고 싶은 엄마, 아빠에게> <보고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왠지 모르게 뭉클하다. '이 남자, 부모님이 진짜 보고 싶은가' 말에선 느끼지 못한 그리움이 글에선 진하게 전해진다.
남편이 쓴 편지를 발견한 다음 날, 남매에게 아무래도 너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재촉했다. 일주일에 하루 월요일마다 한글 공부하는 날 쓰면 되겠다면서. 하루는 편지 초고를 쓰고 그다음 주엔 편지지에 옮겨 보자고. 급할 것 없는 나는 2주에 걸쳐 찬찬히 준비했다. 딸 옆에서 틀린 맞춤법은 일일이 고쳐 주면서. 갑작스러운 엄마 행동에 딸은 엄마가 어쩐 일 이래? 하는 눈치다. "엄마, 여수 할머니 안 좋아하잖아?" 정곡을 콕 찌르는 말과 함께. "어. 그렇긴 하지" "좋아해서 하는 일은 아니고 아빠를 위해서 싫어도 하는 거야.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쓴 편지를 봤는데 어쩐지 좀 많이 짠해서"
오누이가 편지를 썼는데 마침 셋째 언니가 어버이날 나. 의. 시댁에 선물을 대신 보내주겠다면서 애들 사진을 무려 100장이나 보내란다. 앨범에 정리해서 보내드리면 시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어떻게 나보다 제부의 마음을, 아니지 부모의 마음을 이렇게 잘 헤아릴 수가 있나. 감탄한다. 시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건 뭐냐면서 선물까지 보내드리겠단다. "당신은 운 좋은 줄 아셔. 이렇게 착한 처형이 어디 있어?" 생색내니 "하긴 내가 처형복은 좀 많지" 바로 수긍. 남편은 독일 살면서 제일 아쉬운 일 중 하나가 네 명의 처형이 해주던 맛있는 밥을 못 먹는 거라고 종종 말한다. 내가 막내라서 그런지 처형의 제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긴 하다.
사실 올해 들어 남편은 뜬금없이 자주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팥찐빵을 만들어 준 날도 불현듯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 엄마랑 시장 볼 때 자주 따라갔는데 시장 골목에서 팔던 도넛 같은 군것질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시절이 그때도 좋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참 좋았었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서 더욱더. 그땐 참 젊었던 엄마가 이젠 수화기 너머로 목청껏 여러 번 불러야 겨우 듣게 된 엄마가 슬프다고도 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부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럴 때마다 공감력 제로인 나는, 그러게 독일에서 살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당신이 자청한 거면서 왜 이제 와서 징징거리냐며 쏘아붙였다.
며칠에 걸쳐 백장 사진을 추리니 지난 3년간 우리 가족 역사가 고스란히 보인다. 공감도 못 해주고 지청구만 준 미안한 마음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어주게 생겼다. 썩 내키지 않은 일도 어쩌다 보니 흘러간다.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남편의 간절함과 필요를 기막히게 알아서 채워주는 사람의 손길이 만나서. 난 못 이기는 척 묻어간다. 운 좋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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