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활동이 차단되니 매일 빵을 구워도 시간이 더디 간다. 지루하다. 이렇게 심각한 전염병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일이 닥쳐서 난감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바로 무력감인가 보다. 코로나와 우울감이 합쳐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어도 생겼다는데. 그럴만하다. 고립으로 느끼는 무력감. 뭘 해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그렇다고 뉴스만 보면서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수와 사망자를 확인하며 공포감에 떨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21세기 코로나 사태와 비슷한 상황의 책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발견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포르투갈 작가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영화 <디 아워스>에서도 섬세한 표정 연기로 반하게 만들었던 '줄리아 무어'가 주인공인 영화도 같이 보니 더 실감난다.
영화 중간까지 원작과 너무나 흡사해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원작이 탄탄하다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다면? 게다가 실명이 전염병이라면. 실명자와 접촉한 보균자까지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격리된 사회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가. 그중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안과 의사의 아내이면서 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과 함께 격리소에 들어가는 걸 택한 줄리아 무어다. 눈먼 자들의 세계를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한다. 혹은 실명되지 않았음에도 못 보는 거 투성인 삶이 있는 것처럼. 시력을 잃었다는 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것과 같다. 모두가 보지 못하는데 혼자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공포다.
코로나에 걸리면 무서운 게 격리다. 죽는 마지막 순간에 가족을 만날 수 없고 혼자 죽어야 한다는 게 치명적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결국 사람을 멀리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옮거나 옮길까 봐. 결국 눈먼 자들의 도시 결말은 모두가 눈이 멀고서야 끝이 난다. 끝까지 시력을 잃지 않는 단 한 사람만 빼고. 아무리 격리를 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막지 못한다. 시력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가 어떻게 폐허로 변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코로나 사태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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