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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까레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사랑하고

영화, 안나 까레니나 속 레빈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첫 문장은 결혼에 대해, 가정 생활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뚜렷한 의미를 상징한다. 이 작품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혼 생활에 대해 적나라하게 해부한 작품은 없다고 문학평론가 이현우는 말한다. 불행한 가정의 예시는 안나의 불륜 그리고 결혼 생활 파경과 행복한 가정은 레빈의 평범한 결혼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레빈은 톨스토이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 인물로 결혼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통해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키티와의 결혼식 장면, 주변인은 모두 속박이 필연인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하지만 자유를 잃더라도 아니 잃어도 상관없다고 말할 정도로 결단코 행복하게 될 거라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혼식을 거행하는 와중에 밀려드는 불안과 두려움, 인간이라면 마땅히 겪는 감정의 요동을 레빈도 경험한다. 하지만 혼자만 끙끙 앓지 않고 배우자가 될 키티에게 당당하게 털어놓고 키티의 사랑의 확신으로 안심한다. 인생 주기 중 다양한 사건을 맞닥뜨릴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글 덕분에 그때 그 시절의 느낌을 고스란히 소환할 수 있었다.

 

결혼 생활은 예의 자잘한 것들로 꾸려지는 것, 신혼의 고상한 행복을 꿈꾸었던 레빈은”이상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실망스러운 점 중 하나. 또 다른 실망과 매력을 안겨 준 건 바로 부부 싸움“이다. ”그녀와 자신이 단지 가까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어디까지가 그녀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 자신인지 알 수 없게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117쪽) 서로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과잉보호가 일어나기도 하고 선을 넘기도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이 불거지지만 그 대가로 친밀함을 얻는다.

 

결혼 후 석 달, 납득이 가지 않는 하찮은 일로 인해 충돌이 일어나곤 했으며, 나중엔 뭘 가지고 싸웠는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다름으로 인해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예민한 감정으로 잦은 충돌은 어쩌면 당연하다. 부부 싸움으로 ”부당한 비난을 감수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나, 변명을 하고 그녀를 아프게 하는 것은 더 나빴다“라고 성찰한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한 특별할 것 없는 결혼 생활, 아내와 친밀한 남정네를 질투하고 분노한다. 키티의 가족들이 자신의 집을 점령해서 불편하더라도 아내를 생각하고 감내한다. 사냥에서는 승부욕을 발휘한다.

 

형의 죽음과 동시에 확인한 안나의 임신, 불가해한 죽음에서 그를 사랑과 삶으로 인도하는 신비함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죽고 생명은 잉태되고 태어난다. 삶은 그렇게 지속되고 나아간다. 죽음에 대해 숙고했지만 진짜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연약해 보이던 키티가 병자를 대처하고 돌보며 상황을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인생의 어두운 장면에서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고 싶지만 그 또한 자신의 오판임을 깨닫는다. 힘든 순간에 곁에 있는 아내로 인해 형의 죽음도 견딜 힘을 얻는다. 가족의 숭고함을 사랑하는 관계를 통해 깨닫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로 실컷 들뜨고 또 다른 희망을 갖는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고 사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랑이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주었음을, 절망의 위협 속에서 그 사랑이 더욱더 강해지고 순결해졌음을 그는 느꼈다”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