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어떤 이의 고통을 전해 들은 게 아니라 고통받는 당사자 곁에서 직접 느끼고 손 잡아본 사람이 쓴 글.
은유는 홍은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만큼 좌절도 했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나 흔한 인용구 하나 없이 마치 해질녘 한강의 윤슬처럼 글 전체가 반짝이고 읽고 나면 아름다워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 ‘빛나는 부분’은 도저히 흉내 낼 수도 훔칠 수 없음을 느꼈다. 햇살이 바람을 업고 강물에 빛을 산란하듯, 그의 글도 업고 업히고 엉키듯 결속하는 삶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 책은 단숨에 읽어낼 수 없는 글이다. 한국의 불운한 사건과 부조리를 모조리 담고 있는 듯해서. “세월호와 완벽하게 닮았지만 절묘하게 다른 어려움(263쪽)”들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게 믿을 수 없다. 충격과 분노 그 사이를 오가다 무력감과 부끄러움, 정확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코끝이 자주 찡해지고 여러 번 멈추고 눈을 감았다. 작가가 글 말미에 후원과 연대를 부탁한다는 단체가 진짜 있는 건가 검색하며 한편으론 지어낸 이야기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야기가 된 고통은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한다. 나는 이 위로와 연대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219쪽
게다가 저자가 기록한 고통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일 뿐 아니라 그녀가 진짜 만났거나 아는 사람 이야기라 충격적으로 아프고 알게 되어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선생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경쟁구조에서 자발적으로 걸어 나와 야학이라는 곳으로 궤도를 전적으로 수정.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고 싶은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발길을 옮긴이에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재지 않고 뛰어들었고 그곳에서 한 모든 경험이 충격이고 힘듦이지만 함께 고생했기에 기쁨과 이야깃거리를 동시에 갖는다는 고백은 생경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이다.
독일에서 이 나라가 선진국이구나 느낄 때가 간혹 있는데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교통수단 이용하는 게 용이한 모습이다. 독일에서 가장 충격받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밖으로 돌아다니는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는 걸 독일에서야 알았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몇 분이 소요되더라도 휠체어가 타고 내릴 수 있게 기사가 휠체어 받침대를 버튼 하나로 척하고 내려주는 모습은 마냥 신기해서 눈을 못 뗐다. 동네 음악 축제 때 라틴음악이 흥겹게 흘러나오고 불빛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도 함께 즐기는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그동안 짐작만 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밝았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수많은 휠체어 탄 장애인을 독일에 와서야 목격한 건 독일에 장애인이 많아서 더 자주 본 게 아니었다.
“고통이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모르면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할 수는 없다.”(245쪽)
사회의 어두운 면은 저절로 외면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한없이 무겁고 잔인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마음이 심히 불편하지만 그래서 고맙다. 처절한 고통을 이토록 아름답게 기록하다니! 진실을 알아서 괴롭고 불편한 마음으로 그 고통이 덜어질까 싶지만 저자의 의도대로 누군가 그 고통을 알아준다는 것, 함부로 동정하거나 연민을 갖는 게 아니라 알아주는 다수를 만드는 게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 같다.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그냥, 사람’ 일 뿐이라는 거. 함께 '앓아'주지는 못할지언정 최소 '알아'준다면 이 책의 소명은 다한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건 고통받는 자의 절박함에서 나온다는 걸 노들 학교에서 직접 목격한 증언의 글을 읽으며 희망이란 게 조금은 생긴다. 홍은전이라는 작가를 통해 노들야학의 내밀한 곳까지 알았고 중증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꽃님이를 알게 되어 기쁘다. 이 책 인쇄비 절반이 노들야학과 DxE(동물권 단체)에 기부된다. 책이 많이 팔리도록 홍보를 열심히 하고 싶다. 고병권의 말대로 "고통받는 자 바로 옆에서 소매 깃을 내어주고 충혈된 눈을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준 인권기록 활동가 홍은전이라는 사람 덕분에 알게 된 수많은 고통들에 애도를 표한다. 작가는 “부끄러움을 견디며 쓴다”라고 했는데 나는 부끄러움을 견디며 끝까지 읽었다.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은 광장에서 미경 씨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 “라고 말했던 여성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 기록해주고 싶다.”(284쪽)
ch.yes24.com/Article/View/4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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