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그리고영화

미나리

 

미국 이민자 부부의 직업이 하필이면 병아리 감별사다. 이 설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달걀도 낳지 못하고 고기는 맛이 없어서 폐기 처분되는 수평아리. 수평아리를 손 빠르게 골라낸 스티븐 연이 쉬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들에게 너도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젊은 가장이 그것도 외국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암시하는 듯하다. 더 큰 쓸모 있음을 위해서 미국이라는 땅으로 갔고 빅 가든을 하겠다는 포부, 아빠가 뭔가 이루는 걸 보여줘야 되지 않겠냐며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들. 의도는 선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민자의 삶.

 

할머니와 미나리, 누구에게나 뿌리는 존재한다. 환경이 별로여도 잘 자랄 것이라고 인식되는 미나리도 실은 씨앗을 뿌리고 1년이 지나야 번식력이 커진다. 뿌리를 내리기까지 그 작은 식물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첫 1년을 잘 버틴다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할지도 모른다는 이민 정착 첫 1년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렇지 첫 1년이 가장 힘들었지. 남편과 가장 많이 싸웠고 두려움이 극에 달했던 것도 그때다. 한국에 한 번 갔다 온다면 1 년 산 시점이 제일 낫겠다고 판단하고 무리해서 다녀왔고. 그 이후는 어떤가.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때마다 감당해야 할 일은 존재한다. 어느 인생이나 마찬가지겠지만.

 

4년 반이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영원히 이방인으로 경계선의 삶을 살게 되겠구나, 깨닫는다. 어느 쪽에도 완벽히 스며들지 못한 채. 남편은 스티븐 연 역할의 젊은 남편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단다. 과도한 육체노동(농장일) 후 팔도 올리기힘들 정도라 아내가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에서 샤워 물줄기에 눈물이 셖인다. 잘해보려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그 이후의 삶도 만만한 건 아니니까.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은 가족간의 사랑을 의미한다는 감독의 의도도 단박에 이해된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가족 간의 유대감은 저절로 어쩔 수 없이 끈끈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