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엄마를 유심히 지켜봤거나 혹은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이야기가 도처에 가득하다. 여자라서 혹은 엄마라서 한 번쯤은 생각했던 문제의식을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감정을 걷어내고 담담하게 썼다. "엄마만 홀로 다른 성을 갖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을 가족 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e북 22쪽)" 독일에 살면서 나만 가족과 다른 성을 갖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빠르게 밑줄을 그었다.
편안한 안식처라 인식되는 '집'이 흐트러지지 않고 가지런히 정돈되고 때마다 따뜻한 밥이 차리는 사람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없고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쉽게 접근 가능한 반경에 늘 대기하며 가족과 다른 성을 갖는다. 그런 위치의 여성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으로 존재하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24쪽)”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라는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된 글은 나를 수시로 멈춰 내가 살던 집으로 데려갔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곳. 떠나면 돌아갈 집이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면서는 수시로 벗어나고 싶다고 때때로 생각했다. 가족의 안식처일 뿐 내 안식처는 아니라는 생각도 물론 했고. 5분 대기조처럼 가족의 요구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나는 산다. 수많은 집을 거쳐 현재의 내 공간을 갖기까지 끊임없이 내 존재의 무거움을 이야기했던 시간들.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가부장적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의 연장선상으로서의 결혼(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드리언 리치)”일 것이다(217쪽).
저자의 가족 중에 유일하게 책을 읽었지만 자기만의 방은 없었던 엄마의 모습에서 자신만을 위한 자리를 점한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한다는 걸 깨닫는다.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여러 마음의 부침을 거쳐서 집필 노동자가 되고 79년생 여성으로서 주체적으로 자신이 있어도 될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 자신이 머물렀던 과거의 집과 방을 거쳐 현재의 자신이 되기까지 어떤 시절을 겪고 지났는지 민낯을 보여준다. 자전적 이야기지만 글 전체가 다 자기 얘기는 아닌, 가독성 좋고 읽는이 스스로 공간과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글. 쓰기를 욕망한 사람답게 통과한 시절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유한 흔적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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