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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의 생활 밀착 에세이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을 거치는 한 여자의 투쟁 기록/연애, 결혼, 일로부터 수시로 울컥하는 여자들을 위한 셀프 구원의 기록)

 

“내 삶이 내 살 같지 않을 때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한없이 투명해지려면

계속 말해야 한다.

싸움이 불가피하더라도”

 

은유가 말하는 싸움은 질문을 품고 고민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고민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 습관처럼 내면화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내 존재를 설명하기 난감한 순간에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라며 당당하게 따져 물으며 자신을 구원한다. 갈등을 일으키더라도 내 존재를 타인에 의해 설명하지 못하게 단단히 여민 과정의 기록이다.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예민한 촉수를 장착한 저자가 일, 역할, 제도 등 자기 주변의 나쁜 공기를 대번에 알아챈다. 그뿐 아니라 내면의 불편함도 기민하게 잡아채 글로 묶어둔다. 천생 글쟁이고 군대 간 아들이 안쓰럽고 무슨 짓을 해도 예쁜 막내딸 꽃수레 엄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착한 남편이랑 산다.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지만 내세울 만한 명함 하나 없어서 존재를 설명하기 난감했던 경험을 겪은 사람이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이젠 글 쓰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식을 특목고에 보낸 경험담도 아니고 잘나가는 전문직 워킹맘이 쓴 글은 아니다. 다른 부수적인 액세서리를 떼고, 엄마 사람이고 그저 ‘글 쓰는 사람’으로 꿈을 이룬 책이다.

 

내가 따뜻한 밥을 먹고 빨래가 된 잘 개켜진 옷을 입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돌봄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고 고마움을 느끼는 것부터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딸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자동으로 행했던 어떤 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갖는다. 이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을 테니까.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숱하게 먹어서 비워진 밥그릇을 누군가는 치운다. 주체적 노동의 중심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안다고 누구나 다 은유처럼 불공평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리라.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의문을 덜 품어서 그렇고 세상의 잣대에 자유롭지 못해서 그렇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세상의 아픔을 그녀의 글을 통해 다시 인식했다.

 

‘한 달간의 자유와 고독이 봉쇄된 삶’을 버리지도 오롯이 취하지도 못하면서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 불리한 상황을 만나며 울분을 터트린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엄마 생활은 끝나지 않았으니 난 종종 외로웠다.” 저자는 당당히 ‘양육의 고통’과 ‘엄마의 불행’에 대해 대놓고 말한다. 내지른다고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투명해지고 가벼워진다. 저자는 울분이 터질 때마다 시라는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영양주사를 맞았다. 시인과 니체가 그녀 곁을 지킨다. 남루한 현실도 직시할 힘이 생긴다.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도 읊조린다. 지금의 삶이 어쩌면 최선이라고 자위한다. 

 

이 책엔 그녀가 울분을 삼키던 순간에 수혈받은 시어들이 온통 너울거린다. 시어가 난무하는 통에 정신 혼미해지지만 저자의 언어로 체화하려 노력한 흔적엔 시보다 더 와 닿는다. 덕분에 뜻도 모르겠는 아리송한 시를 나도 모르게 자꾸 찾는다. 내게도 힘이 되어줄까 싶어서. 시처럼 밀도 높은 문장을 베끼며 되새김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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