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은유지음
삶이 글을 낳고 글이 삶을 돌본다.고 저자가 누군가에게 써준 글귀가 오래 남는다. 삶을 옹호하는 글쓰기를 잘 표현한 문장이다. 나를 통과해 쓴 글은 나를 지지할 뿐 아니라 성찰하고 검열한다. 살면서 나를 응원하고 편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살맛 나는 일도 없다. 글쓰기는 좋은 지기 이상이다. 뭐라도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삶의 실체는 보잘 것 없고 시시'할 때도 많다. 번잡하거나 지루한 일상을 예민하게 보는 관점은 쓰면서 생긴다. 덕분에 뻔해서 지루한 삶이 덜 외롭다. 써서 공유하다 보면 나만 고통 시절을 지나는 것은 아니라는 자각도 갖는다. 내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힘도 쓰면서 얻는다. 부조리에 대한 불만도 쓰면서 응시할 힘을 얻는다. 살만해진다.
감응하는 신체로 살려면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오로지 경험만으로 관점과 인식의 틀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사람이 잘 쓰는 것도 힘들다. 좋은 글을 알아보려면 그만큼 좋은 글 밭에서 충분히 노닐어야 한다. 글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는 만큼 비례해서 잘 쓰면 좋겠지만 눈만 높아지고 못 따라가는 간격은 존재하지만 나만의 속도로 쓰면 된다. 저자는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집을 글쓰기 수업에 채택했다. 소설가 조정래 작가가 그렇게 많은 장편을 쓰셨지만 시인 아내에게 자주 빨강펜 피드백(소설에 빨간펜선생처럼 줄치며 피드백)을 받고 소설가인 자신보다 시 쓰는 아내가 훨씬 위에 있다고 추켜 세우시는 것은 ‘시인이 공들여 고르고 삭히고 매만진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은 자주 인간을 억압한다. 그런면에서 시는 그렇지 않다. 감응하는 신체란 읽고 쓰면서 머리로 ‘아는 것’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으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이다.
한 권의 좋은 책을 읽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진다. 반대로 생각하면 책 한 권을 쓰는 과정은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담아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 감동까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단 한 명의 독자에게 날아가 꽃을 피웠다는 뜻이다. 나의 경험을 나만의 관점으로 쓰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라는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바’와 통한다. 내 생각을 경험에 덧붙이되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읽거나 쓰면서 갸우뚱거리며 의심하며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유가 조금씩 확장된다. 질문을 품고 찬찬히 담아내면 진솔한 글이 된다고 용기를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살면서 마음에 이상하게 걸리고 불편한 것들부터 쓴다. 쓰다보면 정리되고 왜 내 마음에 걸렸는지 알게 된다. 일차적으론 내가 경험하고 느낀대로 쭈욱 쓴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본다. 단 한명의 독자를 떠올리면 쉽다. 하나의 사건을 예시로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찍어 내듯 보여줄 수 있으면 좋다. 구체적으로 풀어 쓰되 장황하지 말고 간결함을 추구하자. 보여주기보다 설명하는 글이 쓰기엔 쉽지만 독자에겐 그렇지 않다. 습관적 교훈적 마무리를 지양하고 비문도 살피고 명료한 글이 되도록 돌아보고 다듬자. 글은 삶을 돌보기도 하고 배반하지도 않는다니 참 정직하다.
황현산 선생은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이 글쓰기 교재로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학인이 없었다면 이 책은 밋밋했겠다. 학인의 글이 은유를 진하게 통과하면서 주옥같은 배움이 이 책에 담겼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직접 경험한 것에 자신의 관점을 담아 진실되게 쓰니 멋진 책으로 탄생한 셈이다. 수업에서 읽은 책, 추천 목록도 끝내준다. 이젠 머뭇거리지 말고 내 삶의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말고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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