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역사에 대하여.
글쓰기 역사라 지칭하니 괜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그리 생각하지 않으련다. 내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더라. 먼 기억을 더듬어본다. 국민학교 시절 일기 숙제가 싫지 않았고 선생님이 검사하는 타인의 시선도 나쁘지 않았다. 할머니가 키우던 시골집 소가 밤새 울부짖으며 애처롭게 송아지를 낳던 날 밤, '나를 낳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를 자동으로 떠올렸고 엄마 있는 송아지가 부럽다고 일기를 썼다. 속내를 드러낸 일기장이 화장실 휴지로 전락하고 숱한 이사로 여태 보존된 글은 없지만 썼다는 기억은 남았다.
내가 깊이 애착했던 초등 1학년 한형선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시면서 선물해준 책날개에 꾹꾹 눌러써주신 글귀도 떠오른다. 좋아했던 선생님이 주신 책이라는 매체와 그곳에 곱게 쓴 편지는 글에 대한 야릇한 신비를 갖게 했다. 그때부턴가보다. 작가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10대부터 줄곧 친구들은 연예인을 좋아할 때도 나는 늘 작가였다. 선망하지만 ‘가 닿지 못’할 어떤 영역이 작가다.
뭔가를 할 때 가장 큰 동력은 '절박함'이라더니 새엄마와 살았던 7년이 그랬다. 새엄마의 만행을 언젠가 만천하에 공개하고 말겠다는 절박함은 매일 쓰게 만들었다. 새엄마는 본인의 캐릭터에 충실하게 내게 못되게 굴었다. 악하기 그지없고 매너는 당연히 없던 새엄마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곤 자신의 만행이 들켜서인지 나를 쥐 잡듯이 잡았다. 구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꿋꿋하게 진상을 기록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왜 평범한 가족을 갖지 못하는가. 그런데도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느낀 불행과 결핍은 자동으로 글쓰기라는 동아줄을 잡게 했다.
두 번째로 절박했던 때는 지난 십 년의 긴 육아 기간이다. 내가 선택한 엄마의 삶이지만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행복하지 않기도 했다. 여자에게만 백 프로 불합리한 결혼 제도는 아니겠지만 내 입장에선 24시간 육아와 시댁이란 존재가 버거웠다. 힘에 부친 여파는 종종 아이에게 흘렀다. 엄마로서의 본분과 내 꿈 사이에서 충동하며 담금질하는 순간에 날 구원한 것은 쓰기였다. 다행스럽게도 새엄마와 살 때만큼 불행한 절박함은 아니다. 엄마로 누리는 축복스런 삶을 놓치지 않으면서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 글쓰기였다.
쓰면서 육아의 긴 강을 무사히 건넜고 그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려 초고를 썼다. 작가로 사는 꿈이 무르익은 시간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꿈꾸던 대로 현재 ‘엄마’로 사는 것처럼 '작가'도 반드시 닿아서 내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꽂고 싶은 땅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 내 발목을 더는 잡지 않도록 내 글이 당당하게 출판되면 그 날엔 쓰기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글 쓰는 사람, 유진으로 내 존재감이 분명 해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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