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노동 체험기, 마트, 식당, 공장 등의 노동자 입장에 서 보는 기회, 저널리스트답게 단문으로 끊어진 문장들, 체험에서 나온 사무친 표현들, 구조를 읽어내는 관점 등 좋은 글의 요소를 갖추었다."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4천 원 인생'을 소개한 글은 단번에 읽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e북으로 발행된 책이라 가장 먼저 읽어본 책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마감 노동자인 기자들답게 글빨은 사무쳤습니다. 한 달이긴 하지만 직접 노동현장으로 나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도 눈물겹고요.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Servus'다.
이 책을 통해 본 '4천원 인생의 삶' 만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서비스가 노예를 의미하는 줄은 몰랐거든요. 내가 지불한 '돈'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서비스를 기대하곤 했으니까요. 식당 아주머님의 불친절에 불평을 쏟아놓기도 했고요. 식탁에 있는 벨을 아무렇지 않게 눌렀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처음 외식했을 적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습니다. 남편이 그러더군요. 이곳에선 그렇게 부르면 매너에 어긋난다고요. 식탁에 벨이란 것은 없고 그저 필요하면 눈을 마주치면 된다고요. '눈을 마주친다.'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원 사람이 우리 순서에 맞게 알아서 와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면 주문을 받고 음식을 천천히 가져다줍니다.
서비스가 귀한 나라, 독일에 와서 직접 살아보니 '서비스=노예' 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합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감겨주지 않음에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겨우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자르면서 긴 머리라며 40유로를 받고 머리를 감겨주기는 것은커녕 눈썹 다듬는 서비스도 없었습니다. 양주 동네 미용실에서 3만 5천 원을 내고 컷은 물로 펌에 머리를 감겨주고 눈썹 정리까지 해주던 때가 그리웠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노동자의 무한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마냥 부러워만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4시간 편의점이란 개념 자체가 없고 배달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엄마사람은 독일에서 노동 시간은 더 늘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도 도시락을 싸가면서 점심도 매일 집에 와서 먹으니 한국의 무상 급식이 철없이 부러울 뿐입니다. 세탁소도 있을 텐데 워낙 비싸다고 들어서 이용할 엄두를 못 내고 모두 집에서 해결합니다. 신기하게도 한국에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세제들이 집에서도 모두 가능하도록 발달되어 있습니다.)들이 모두 가능합니다. 한국에선 돈만 있으면 뭐든 '아웃소싱'을 시키는 삶이 가능했습니다. 다림질이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의 와이셔츠도 엄청 저렴한 돈으로 맡겼으니까요. 돈이 많았으면 했던 이유도 한때는 돈으로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의 노동력을 마음껏 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돈으로 노동력을 산다는 것이 그토록 쉬우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물론 지금도 한국에서 가끔 사 먹던 김밥 한 줄이 그립고 짜장면 배달도 아쉽긴 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일요일엔 문여는 마트가 없습니다. 미리미리 장을 보면 주말에 마트가 문을 열지 않아도 하나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휴일에 마트가 쉬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쉰다는 의미니 꼭 필요한 일이죠. 대형마트도 없지만 고만고만한 마트 안엔 시식코너도 없습니다. 가끔 시식하는 것이 있다 해도 시식 맨은 없습니다. 그저 시식대 위에 시식할 것을 올려놓을 뿐이지요. 알아서 먹고 빈용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하루 노동시간 10시간을 넘으면 벌칙을 문 다는 법으로 정해놓으니 노동자들은 초과 근무를 하면 안 됩니다. '한국인이 독일보다 5개월 이상 더 일하고 연간노동시간이 독일은 1371시간, 한국은 2285시간이라는 것'을 기사에서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노동 시간의 차이입니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심하게 있는 삶을 사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독일의 최저 임금은 8천 원 이상으로 4천 원의 두배가 넘습니다. 노동자의 '최소한'을 지켜줄 사회안정망이 갖춰진 셈이지요.
인권 존중이 무엇인지. 인권 존중이라는 거창한 말 뒤엔 나와 동일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하고 서비스를 누린 것이 늘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개인의 노력만으론 역부족이고 인권을 지켜줄 사회안정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까지요.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차가운 돈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연대다. 내가 지금 테이블벨을 누르면 달려오는 이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사람'아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조금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록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팍팍한 삶에 드라마는 없다."
"절박해서 시작한 일, 그만두기 어렵다."
"가난한 삶이 더 아픈 걸까? 맞다."
"삶은 금세 비루해진다."
"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쉽다."
"갈수록 계층간의 벽이 견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