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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이런 뻘짓은 처음이라서요

독일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한 감기에 걸렸어요. 병원은 처음인지라 검색해서 그중 한 곳에 남편이 전화를 걸었죠. 독일은 뭘 하든 약속(Termin) 잡는 게 중요하니 미리 전화 예약이라도 해둘 요량으로요. 다행히 그날 와도 된다고 해서 구글 지도를 따라 병원을 찾아갔어요. 병원 건물은 일반 집과 다르지 않은 않아서 이게 맞나 싶어서 여러 번을 확인했죠. 문 옆에 병원명(그땐 보이지 않았던)과 의사 이름 그리고 초인종까지 있어서 순간 이 벨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눌렀는데 찌찌찍하는 소리에 움찔하는 찰나 문이 달깍 열렸어요.

 

보험 카드 접수 하고 대기실에 들어가니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어요. 초심자 티 안 내는 척하며 얌전하게 한 시간이나 기다려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대뜸 의사가 이렇게 묻는 거예요? “임신하셨어요?” 두둥! 어쩐지 기다리면서도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어요. 임산부나 이제 막 출산한 엄마들이 의외로 많고 대부분이 여자였거든요.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임산부 아내와 함께 온 남편이었고요. 언젠가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 기다린 풍경과 흡사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했죠.

 

결국 우린 한 시간이나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던 거에요. 그날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남편과 둘이니까 웃고 말았지만 씁쓸했어요. 앞으로 우리가 독일에서 하게 될 수많은 뻘짓의 예고편일지도 몰라서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이니 남편은 전화를 걸어서 대뜸 아내가 감기에 걸렸다. 진료 보러 가도 되냐고 했더니 된다고 했대요. 하긴 임산부도 감기에 걸리니까.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으니 당연히 와도 된다고 했겠죠. 온화한 인상으로 임신하셨어요? 라고 물었던 의사가 새로 알려 준 병원으로 황당해하면서 갔어요.

 

두 번째 허튼짓은 좀 웃겨요. 어느 유치원에서 외국인 엄마들을 위한 독일어 수업을 들었는데 마샤라는 폴란드인 친구를 만났어요. 따로 만나기로 한 날, 그 친구가 약속 장소를 왓츠앱으로 보냈는데 분명 버거 하우스(Burger Haus)였어요. 대번에 아, 햄버거 가게구나.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햄버거 가게를 떠올리고 가보니 Burger Grill인 거예요. 어? 버거 하우스가 아니네.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부거 하우스(Bürger haus)를 잘못 보낸거였어요. 독일어 단어에서 단어 위에 점 두 개(움라우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단어가 되거든요. Burger haus에서 움라우트유(ü)를 u로 쓰는 바람에 햄버거 집으로 오인했어요. 햄버거 집 앞에서 만나자는 줄 알고 속으로 나 버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까지 생각했다니까요.

 

세 번째는 좀 슬퍼요. 민망함을 넘어 분노를 뿜었던 날이고요. 독일어 싫어, 진짜 싫어. 머리 아파 미칠 것 같아.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데?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다고 울부짖은 날이에요. 독일어로 된 어떤 정보가 머릿속에 머무는 시간은 극히 짧아요. 좋아하는 노래 가사도 정확하게 기억하기 어렵고 어설픈 기억력을 못 믿어서 늘 뭔가를 적어야 안심인 사람인데 외국어 그것도 독일어 중요 정보는 읽어도 까먹기 일쑤에요. 유치원과 학교에서 안내문은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한동안은 사전을 끌어안고 해석하느라 머리가 아팠어요.

 

어느 정도 적응된 다음엔 꾀가 늘어서 대충 쓱 보면서 핵심만 파악하곤 했는데 중요 정보를 놓쳤어요. 유치원에서 어느 정원으로 나들이 간다까지만 접수하고 귀가할 땐 부모가 직접 장소로 데리러 오라는 내용은 미처 파악을 못했어요. 어디 간다는 것까지만 대충 보고 데리러 오라는 것까지는 접수를 못 했던 거죠. 끝나는 시간에 유치원으로 데리러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늦나보다 했어요. 알고 보니 직접 데리러 가는 거였고 내 아이만 선생님 차를 타고 유치원으로 와서 만났어요. 나중엔 차도 없는데 어차피 잘 된 일이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날이었죠.

 

위의 세 가지가 독일에서 한 뻘짓 베스트 쓰리네요. 지나고 보니 이렇게 삽질의 추억을 쓰는 날이 오는 군요.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진리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