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땡스북스 손정승]
겨울의 초입, <입동>이 머지않았다. 11월의 초입에선 올해는 김장을 몇 포기 할지 가늠하고 배추를 사서 직접 절일 것인지 절인 배추를 살지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예년보다 고춧가루가 비싸다며 투덜대며 김장에 필요한 재료를 하나씩 준비하며 겨울 맞을 준비를 할 테지. 두꺼운 겨울 이불도 꺼내두고. 여름의 한복판에서 읽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첫 단편 <입동>이 이렇듯 아픈 소설인 줄 몰랐다. 아프지만 그리 낯설지도 않다.
어렵게 장만한 집에서 아내가 정성을 쏟은 공간은 단연코 부엌이다. 올리브색 벽지에 복분자 액이 낭자하게 터진다. 하필이면 그토록 시뻘건 복분자 액이라니! 아내는 심혈을 기울여 올리브색 포인트 벽지를 고르고 그 벽 아래에 사인용 식탁을 놓고 그 위에는 각종 차와 원두와 커피 그라인더를 놓았다. 오십이 개월의 아이와 부부는 그곳에 앉아 매일 밥을 먹었다. 아이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며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들기도 하던 아이와 평범한 일상이 쌓인 곳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워가”는 부부에게 그 계절을 함께 보낼 아이를 잃었다. 이다음엔 할 말도 쓸 말도 잃는다.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슬픔과 별개로 생활비 통장에선 남편 월급만으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금액이 매일 빠져나간다. 부부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이름은 참혹하다. 아이도 잃고 ‘꽃매’도 맞는다. 아내가 도배를 하다가 뱉은 말 “다른 사람들은 몰라”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올리브색 벽지에 처참하게 튄 복분자 액
도배를 하지 않을 수도 다시 하기도 어려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배를 해보려는 아내
도배지를 사면서 만난 영우 또래의 아이
식탁에서 발견한 아이가 자기 이름도 채 쓰다 만 이응 두 개
그걸 뒤늦게 발견하고 억장이 무너진 엄마
풀을 발라 들고 있던 도배지에서 고름처럼 하염없이 떨어지던 풀
너무 선명하게 그려져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지만
소설이니까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리지 못하는 현실이 더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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