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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이상한 정상 가족

 

독일에서 딸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같은 동네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도 종종 만나 논다. 어느 날 아빠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 아빠는 이제는 사랑하지 않아서 같이 살지 않아이 얼마나 단순한가. 사랑하지도 않는데 급기야는 원수처럼 여기면서도 자식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랑의 서약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애틋한 노부부를 이곳에서 자주 접하기도 하니까.


며칠 전 그 친구의 엄마가 활짝 웃으며 약지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를 자랑한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면서. 그 새로운 친구는 남자겠지만 굳이 친구라고 칭한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라 엄청 축하한다면서 나도 덩달아 활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정상 가족이데올로기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 가족>을 읽으며 이해됐다. 다양성의 부재는 정상에 집착하는 만큼 그 외의 가족 형태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신념은 그만큼 사회 안전망이 전무하기에 가족과 개인의 부담감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가 잘못되면 엄마에게 책임을 전적으로 묻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닌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책임을 개인 혹은 가족에게 돌리고 사회의 공적인 개입(예를 들면 복지 정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회 신뢰도가 높은 나라인 스웨덴은 양육자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 시스템적으로 적절한 도움(아동수당 지급, 부모 교육, 육아휴직, 체벌 금지 등)을 준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개인이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도움을 줄 때 부모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좋은 가정은 환경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위기에 처한 부모에 대한 공동체의 지원을 강조한다.(386쪽)" 독일에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급되는 아동 수동은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는 장치인 셈이다. 외국인에게도 차별 없이 지급되고 매달 한 아이당 190유로(25만원)씩인 아동 수당 하나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확실히 높아진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보통 부부와 다를 바 없이 사는 부부를 보면서 꼭 결혼이라는 형식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부부가 갈라서도 자녀에 대한 의무는 성실을 다하고 불필요한 이상한 시선은 당연히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더 불행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에 자족할 때 부모든 아이든 행복해지지 않을까. 당연히 복지 시스템까지 협력한다면 이상적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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