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병> 나시카와 미와
한 인간이 철 들기 위해 소중한 이를 잃는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그건 절대 아닐거라고 손사래를 칠 수도 없을 마치 어리석은 면도 분명 갖는다. 삼 백 페이지가 넘는 긴 글이 필요할 만큼 주인공 사치오가 삶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담담하고 더디지만 그 여정이 쉽게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간접 경험 하는 듯하다. 사치오의 못남을 마음껏 욕할 수 없는 이유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각자 화자가 되어 자기 견해를 밝힌다. 저 사람은 누구지? 아내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할까. 궁금해할 때쯤이면 알아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엄마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만들지 못하고 죽었다” 사치오 아내인 나쓰코와 여행 중 함께 죽은 친구에겐 아이가 있다. 사치오는 우연히 그녀의 자식들을 돌보며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일상의 자잘함을 경험한다. “자신이 얕잡아 본 것들 가운데 실은 거대한 세계가 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같이 살아가는 이를 통해. 예를 들면 이런 감정들, “누군가에게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충실하게 생활했던 나쓰코는 나를 암담하게 했다” 나쓰코는 자신의 손을 거치면 예뻐지게 머리를 만지는 일을 했다. 작가인 남편을 오랫동안 뒷바라지 하며 현실에 발 딛고 성실하게 노동했던 아내다. 그에 반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를. 미처 몰랐던 자기를 성찰하고 아내를 이해하는 과정도 엿보인다.
이 소설의 작가인 나시카와 미와는 직접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었다. 동일한 제목의 소설이든 영화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성장을 하고 간단히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상실의 슬픔을 겪어야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고 지금 이곳에서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예기치 못한 이별엔 속수무책이겠지만 그만큼 오늘, 현재에 만나는 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함을 상기한다. 그 메시지를 되새기고 곱씹으며 곁에 있는 가족을 한 번 더 그윽하게 살펴본다. 그 대가를 언젠가 치르지 않으려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매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참, 한숨만 나온다.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내에게 고백하는 대목 중 일부다. 어쩌면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살아있는 동안에는 노력이 중요하겠지.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사람은 후회하는 생물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건 어째서일까. 사랑해야 할 나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가가 작지 않군. 대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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