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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곳보통날

독일어 수업


실은 요즘 글을 못 쓰고 있어요. 핑계라면 독일어 수업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어서죠. 왕복 3시간 걸려 수업에 다녀오고 수업에 4시간을 할애하는 게 쉽지 않군요. 배우는 건 좋아하는 편이고. 그게 어학이라면 뭐 나쁠 건 없지만 이 나이에 독일어를 배워서 무엇에 유용할까. 부정적인 생각은 접고 일단 갑니다. 어학원이 그렇듯 분위기는 학구적입니다. 물론 젊은 적 다니던 거라 에너지 소모 정도는 다르지만요. 4시간 독일어만 들리는 곳에 있다 나오면 어질어질합니다. 남매가 초반에 많이 힘들었겠구나. 빠른 시간 안에 잘 적응해 다니는 게 참 대단하다 싶어요. 제가 경험한만큼 이해의 폭이 늘어난다는 것도 확인하고요. 


마흔에 철인 3종에 도전한 이영미가 쓴 <마녀 체력>에서 우리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로 운동과 독서(글쓰기는 짝궁) 그리고 외국어를 꼽는 것에 동의합니다. 전 이 세 가지에 몰입하면 후회가 없고 행복지수도 어느 정도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적응기간 동안 운동과 독서(글쓰기)가 없었다면 힘들었겠죠. 요즘은 독일어까지 추가되어 몰입할 영역이 대폭 늘어났어요. 그만큼 다른 영역이 줄어드니 행복지수는 떨어지는 느낌이지만요.

 

정원이 스무 명인인데 한 명도 겹치는 나라가 없다는 게 엄청 신기해요. 한국인은 당연히 저 뿐이고요. 아시아인을 찾아보면 인도인 방글라데시 그리고 저까지 셋이에요. 나이는 다행이 제가 제일 많은 건 아니고요. 미국에서 온 의사인 친구는 일 년 안식년으로 독일에 왔다는데 독일어를 배우러 온 게 놀랍고요. 물론 A2가 어려워서 기초반으로 갔지만요. 반 이상은 젊은 친구들이에요. 성별도 반반이고요.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리면서 겨우 따라가면 휘몰아치듯 시간이 흘러요. 기분 좋은 피곤함이 몰려오기도 하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배도 고프고 눈도 뻑뻑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지난 주엔 오랜만에 김나스틱 운동을 심하게 했더니만 몸이 천근만근이 되어 아침에 일어나기조차 힘들지 뭐예요. 날은 춥고 어둡고 갈 길은 멀고 슬슬 꾀가 나던 참이었는데 마침 몸이 아파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뭘 한 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편이라 수업을 빠진다는 게 쉽진 않은 편이에요. 하루 빠지면 돈이 얼마야. 그 다음번 수업 못 따라가면 어쩌나 빠지고 나면 후회할지도 몰라 어떻게든 가면 컨디션이 나아질거야 등등  여러 생각이 났지만 더 심하게 아프기 전에 몸을 먼저 돌봤어요. 하루 빠져도 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고요. 


독일어 수업에 대한 기대치를 낯추기로 했어요. 일단 수업을 빠지지 않고 가는 걸 목표로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어느 덧 수업의 반은 지났고 과연 언제 느나? 의구심으로 매번 수업에 가고 어려워도 최대한 집중하고 과제를 해요. 어젠 클라우디아와 두 번째로 독일어로 대화한 날인데 처음보다 훨씬 수월했어요. 점점 어떻게든 조금씩 느나봐요.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던 때처럼 독일어도 그렇게 입을 떼고 있어요. 영어를 공부할 때보다 환경은 훨씬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요. 물론 어느 천년에 독일어를 배워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뭐라도 되겠지 싶은 심정으로 묵묵히 하는 중이에요. 노력한만큼 날 배신하진 않겠지. 그리고 댓가를 지불한만큼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