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파티(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
남편이 3주간의 긴 여행으로 집을 비운 날, 아홉 살 아이의 벼르고 벼르던 소원이 이루어졌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밤 늦게까지 놀고 잠도 같이 자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잘 생각은 못했는데 아이가 크면서 새로운 욕구도 생긴다. 가장 친한 친구 3명을 초대했다. 친구의 부모님들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원래 지난주 금요일에 친한 친구 한 명을 초대하기로 했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열이 나는 바람에 일주일이 연기되었다. 그 사이 친구가 두 명이나 더 늘었다. 어차피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쿨하게 허락했다. 단 원칙은 저녁은 각자의 집에서 먹고, 샤워까지 마치고 각자의 베개와 칫솔은 챙겨 오는 걸로 했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 원칙은 다른 친구들에게 절대로! 소문내지 말기!였다. 더 이상 아이들이 느는 것은 무리니까. 아이는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금요일, 저녁 7시 반부터 아이들이 하나 둘씩 인터폰을 눌렀다. 나는 장난끼가 발동해서 인터폰에 대고 ‘암호를 대라, 오바’ 했더니만 첫 번째로 온 아이는 순간 쫄아서 “모르겠는데요.” 그런다. 마지막에 도착한 아이는 재치 있게 “암호 모르는데요. 괜찮아요. 경비 아저씨에게 호출 하면 되요.” 하면서 먼저 선수를 친다. 귀여운 녀석이다.
한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를 맡기는 데 인사라도 드린다면서 과일을 양손 가득 사 들고 오셨다. “어쩜 이런 멋진 이벤트를 하실 생각을 하셨냐”면서 대단하다는 칭찬도 잊지 않으셨다. 일부러 찾아 오셨는데 그냥 가시라고 하기가 뭐해서 차 한잔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잘 통하던지 밤 열 시가 넘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들이 2학년이 되면서 새롭게 친해진 아이라 더욱 더 할 이야기가 많았다. 엄마들끼리도 좋아하는 관심사(커피, 산책, 책)를 발견하고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마침 같이 자게 된 세 명의 친구들은 학교가 끝난 후에도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라 친밀도가 더 높다. 서로의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친구들이다. 내가 암호를 대라는 말에 경비 아저씨를 호출하겠다던 아이는 엄마가 싸주셨다면서 직접 싼 김밥을 들고 왔다. 아이의 소풍 날, 서툰 내가 무딘 칼로 김밥을 썰다가 애먹던 일을 떠올리니 정갈하게 담긴 김밥이 얼마나 감동인지 모른다. 맛도 좋은 ‘김밥의 힘’으로 난 그 밤을 버텼다.
7시 반부터 놀기 시작한 아이들은 새벽 한시가 되도록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터닝메카드라는 장난감이 한 창 인기일 때인데 메카드 놀이도 했다가 레고도 했다가 체스도 했다가 알까기도 했다가 베개싸움도 했다가. 이 놀이 저 놀이 쉬지 않고 노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놀랍다. 남자 아이 넷, 우와, 장난이 아니다. 남자 애들 수다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오매, 시끄러운 거~' 아랫집에서 올라 올까 봐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사다리를 타서 과자 뽑기 게임을 준비했는데 집에 오신 엄마랑 이야기를 하느라 사다리 게임은 할 새가 없었고 녀석들은 먹기에 여념이 없다. 사다리 게임은 둘씩 짝을 지어 누구와 침대에서 잘 것이지 바닥에서 잘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 사용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간에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취침 시간을 12시로 했다가 결국 1시로 늦춰서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새벽에도 몇 번을 깨서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았다. 이불은 잘 덥고 자는 지 덥지는 않은지. 꼬마 손님들이 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랏, 새벽 6시 반에 알람이 울린다. 다음 날 아침에 태권도 심사 보러 간다는 아이가 7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더니 알람을 잘못 맞춘 모양이다. 오마이 갓!!!!!결국 6시 반에 아이들이 모두 비몽 사몽간에 일어났다. 잠을 못 자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뭐가 좋은 지 제법 굵은 목소리가 시끌 시끌이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들의 추억 쌓기를 해주었는데 날밤을 새다시피 하니 내가 왜 고생을 사서 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밤새 같이 보내고 몇시간 뒤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는다. 학교 선생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의 조합이 끝내준다. 어쩜 그렇게 매일 놀아도 질리지 않고 신나게 노는지 대단타. 각자의 집에 돌아가면서 “다음에 또 자면 안돼요?” 묻는다. 이를 어쩌나. 당분간은 아저씨가 자리를 비울 날은 없을 듯하구나. 아이구. 온몸이 삭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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