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발랄 하은맘이라는 이름으로 육아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거친 엄마 김선미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절대양육 3년을 군대와 비교해서 쓴 '군대 육아' 책도 인상적이다. 군대만큼 빡세고 정신 줄 놓는 육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댁과 남편에 대한 발언은 뚫어 뻥처럼 시원하다. 찰진 욕에선 대리 만족을 느낀다. 그녀의 말대로 육아 3년을 미친 듯이 몰입하고 열나게 공부하며 내 수행 시간으로 보낸다면 세상에 못할 일도 없겠다. 한창 육아 중 일 때 의사인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녀의 월급은 500이 넘는단다. 의사 부부인 그 집은 연봉이 1억이 넘는다. 친구가 말한다. “내 월급이 300만 됐어도 일 안하고 애 봤지.” “그래. 니 똥 굵다.” 재수 똥 덩어리 같은 이라고!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친구의 월급이 부럽진 않다. 오히려 (내가 대기업에 다니거나) 아이가 종종 시간을 빼지 못하는 전문직(나도 상담가면 전문가 맞는데?)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 입장에서 합리화겠지만 포기가 쉬운 많지 않은 월급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와 보낸 3년이라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하다. 밤사이 시루에서 자라는 콩나물처럼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는 자식을 잠든 모습만 보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난 아이의 인생에서 최고로 예쁠 시기를 충분히 보고 물고 빨고 싶었다. 인생의 다른 어떤 때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200프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해도 후회는 남고 경력 단절은 불안하다. 최소 3년 동안 소속감 없이 사회와 단절되어 불안을 견디는 일은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시절, 지나가는 임산부의 배를 보면서 부러워 죽겠는 날의 심정보다는 낫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3년 동안 아이를 키우고 난 이후에 사회 어디에도 내가 할 수 있는(can) 일은 하나도 없다' '조직으로의 복귀 불가?' '평생 애만 키우다 늙어 죽는다?' 별별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 때 마침 같이 사는 헤드 헌터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연봉 최소 오천만 됐으면 그냥 일 했을까? -음, 고민이 되겠지. -그쪽 전문가니까. 당신이 경력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력 단절이 얼마나 큰 타격인지 잘 알잖아. 당신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긴 육아기간을 거치고 난 이후 다시 사회로 복귀 가능 할까? 머릿속에는 5년이라는 숫자라 맴돌았다. -당신이 보통 직장인이라면 힘들겠지. 당신은 전문 상담가잖아. 아이를 직접 키워본 경험이 앞으로 하는 일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당신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르고. 그리고 김작가님이 책 써서 대박 낼 텐데. 앞으로 잘나가면 나 모른 척하는 거 아냐? 결국 자기 마누라니까 괜스레 날 띄워주는 말로 마무리하는 거겠지. 사회에서 만난 후보자였어 봐. “앞으로 사회 복귀는 힘들겠습니다.” 도장 땅땅!! 그 정도 사회 물정은 누구나 안다. 의사 친구는 가끔 내게 전화해서 말한다. “아줌마한테 아이 맡겨놓고 나와서 얼마나 불안한지, 집에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일 할까. 중요한 일은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고 어린 아이를 맡길 만큼 강심장이 아닌 나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생각한다. ‘그래, 그년이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더니만 역시 독한 년이라 가능하다’고. 친구가 염장을 지른다. “유진아, 넌 진짜 아이 키우는 게 적성에 맞나 봐. 야 난 애하고 24시간 있어야 했던 육아 휴직 3개월 동안 죽는 줄 알았다. 일하는 게 백배 나아.” 그럼 그렇지. 아이와 함께 24시간 보내기 힘듦은 인정하는구나. “미친년, 나도 알아 이년아. 누군 그거 몰라서 3년 동안 나 죽었소 하고 사는 줄 아냐? 내가 얼마나 돌아버릴 때가 많은데 그래도 애를 낳았으면 최소 3년은 엄마가 끼고 키워야 한다고 보는 책마다 말하는 데 어떻게 그걸 무시하냐? 이론 우습게 보지 마라. 난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닥치고 3년 육아’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30년 편하게 살라고 3년 적금 허리띠 졸라매는 심정으로 허벌나게 내 시간 주는 거야.” 전업맘을 선택하고 가끔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은 친구가 당시 느끼는 불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해서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느낌을 떠올릴 때 내가 선택한 불안은 훨씬 견딜 만 해졌다. ‘그래, 3년 집에서 아이 키웠다고 사회가 날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땐 나도 사회를 거부하고 말겠어. 내가 할 일은 내가 만든다.’라는 각오도 했다. “자연의 균형 속에서 시간과 절기의 원칙을 배운다. 삶에서는 불균형이 균형일 때가 있으며, 단기간 동안의 집중도 삶의 전반적인 사명에 이바지 한다. 예를 들어, 아기를 갓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돌보는 데 엄청난 시간을 들인다. 어머니의 삶은 한동안 균형에서 벗어난 여정처럼 보인다. 평생의 관점에서 삶을 보면, 균형이란 평생에 걸쳐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유산을 남기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일시적인 불균형에도 맥락과 의미가 주어진다.” '일시적인'이라는 말이 안심이나 불균형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고 현실의 불안을 무마시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의미를 발견하고 엄마의 시간을 자녀에게 제 때에 주는 일은 인생의 긴 여정에서 축복이다. 언젠가 남을 후회는 최소화하고 아이가 잘 자라준 일은 선물이고 엄마 수행은 저절로 되었으니 뭐라도 되겠지. 아님 말고.
'엄마는오늘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근두근 꿈명함 (0) | 2017.05.08 |
---|---|
버럭 신을 잠재우기엔, 여행이 최고! (0) | 2017.05.04 |
아이도 좋고 엄마도 좋은 산행 (0) | 2017.04.26 |
파자마 파티 (0) | 2017.04.19 |
괴물 엄마로 변하지 않으려면 (0) | 2017.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