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를 키우는 시기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가족으로 인한 피로감을 자주 느낀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고 단순 반복되는 ‘매여 있는 의무’에 지치면 짜증이 잦고 인내력은 쉽게 고갈된다. 이럴 때는 자꾸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절대양육기간을 지나면서 유독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컸다. 육아에 지친 증거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힘겨움은 짧은 여행을 매번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열심히 애 키운 당신, 떠나라' 라고 해줄 정도로 나에게 보상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생애 언제 이토록 타인을 위해 희생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을까. 쉬지 않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콧바람을 쏘이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가장 신나는 일은 남이 해준 밥을 먹는 일이다.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길 위에서 함께 한 추억'을 남기고 싶다. 큰 아이가 열살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녔던 짧은 일정의 국내 여행은 참 잘한 일이다. 틈만 나면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는 설레임이 크다. 일상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집 떠나 보면 내가 돌아갈 곳인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다시 돌아와 잘 살기 위해 떠난다는 말은 맞다.
아이와의 여행은 짐 싸는 일부터 보통 일은 아니지만 집에서도 고생이고 나가서도 고생이라면 난 나가는 쪽을 택한다. 순전히 내가 살기 위해서 떠났다. 집안일에 멀미가 날 때, 아이들과 남편하고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사는 일이 숨이 턱턱 막힐 때 새로운 공간 속에서 만나면 좀더 여유로워진다. 버럭 거리는 일이 잦을 때는 여지없이 집을 떠나야 한다. 여행을 떠나 새로운 공기를 마시라는 몸이 보내는 신호이다.
여행의 가장 큰 묘미 맛집이다. 집에서는 손 떨려서 못 먹는 한우를 횡성에선 과감히 먹는다. 횡성에 들려 남편이 좋아하는 소를 먹고 대관령 휴양림에서 밤새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룻밤을 묵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다음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떼 목장에 들려 양들에게 먹이를 직접 먹인다. 강릉으로 넘어가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모래놀이를 하고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임해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더 묵는 코스만으로도 우린 충분하다. 바다와 산과 양떼와 한우, 가족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코스다.
남이섬은 일년에 두 번 이상은 간다. 당일 치기 여행이 가능하고 섬에서 남매와 하루 실컷 놀기 좋은 곳이다. 다양한 공연이 야외 무대에서 수시로 열리니 공연을 보고 낑낑 거리며 페달을 밟아야 가는 가족 자전거를 탄다. 여기 저기서 마주치는 다람쥐는 덤이다. 밖에서 놀다 지치면 천장 높이까지 책이 전시된 예쁜 도서관에서 실컷 책을 보다가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온다.
여행지에서 잊지 않는 일은 삼발이를 놓고 가족 사진을 찍는 일이다. 남매가 더 크기 전에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추억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 언젠가 곶감처럼 야금야금 빼먹게. 기억력 좋은 남매에게 정신 줄 놓친(?) 엄마의 모습은 잊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럭 신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집 떠나는 여행이 최고다. 여행의 약발이 한동안은 갈테니까. 생기 넘치는 일상 여행을 위해 난 오늘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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