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은 제목에서부터 자동으로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떠오른다. 철학교사 나탈리에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예고 없이 다가와 고요한 일상뿐 아니라 삶을 흔들었듯이 은유는 자신에게 다가왔거나 오래 머물렀던 말들을 고르고 정제해서 한 편의 글로 완성했다. 주로 좋아하는 책, 글쓰기 수업, 인터뷰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이다. 외부 환경인 제도나 사람 혹은 가부장제 언어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던 것들을 인식하고 사유한다.
나도 언젠가 느꼈지만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떠돌던 희미한 마음을 그녀가 적확한 문체로 명료하게 대변해준다. 마음이 허기지거나 울적한 날은 어김없이 은유 글을 찾아 읽는 이유다. 은유는 종종 글을 밥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녀의 글은 정말 딱 따뜻한 밥 한 그릇의 포만감이다. 끼니의 소중함을 생각할 때 밥 한 그릇은 절대 적지 않다. 그뿐 아니라 울적해지면 떠오르는 단골 밥집처럼 은유 글이 읽고 싶어 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힘들게 찾아간 백반집에서 나오는 계란말이나 무말랭이 같은 흔한 일상 반찬이지만 그 맛을 내기는 어렵고 내 앞에 차려진 정갈함에 뭉클하고 익숙해서 더 맛있게 배부르고 먹고 나면 어김없이 힘이 솟는 것처럼.
남성 중심 사고에 길들여져 무의식적으로 반성하고 자책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왜 나는 자꾸 반성하는가. 엄마는 왜 자꾸 죄책감의 눈물을 흘리는가. 불행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딸은 과연 살림 밑천인가. 며느리는 집안의 사노비인가. 여자라서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억울하고 부당한 순간에 울음이 비집고 새어 나오고 비틀거릴지라도 결국은 삶의 정 가운데로 곧게 나아간다. 엄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라는 상실의 쓰나미 속에서 절대 스러지지 않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상실이든 불행이든 자신에게 다가온 감정 그대로 인정하며 산다. 영화 내내 억지로 뭔가를 부인하지도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는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이 잊히지 않는 것처럼 은유 글도 그렇다.
힘든 순간에 철학 교사인 나탈리에겐 철학이 힘이 되었듯 은유에겐 쓰면서 혹은 읽으면서 슬픔을 건너거나 불행을 직면하거나 부당함에 맞설 생각이란 걸 하면서 고통을 빠져나갈 그녀만의 출구를 갖는다. 자꾸 살던 대로 돌아가려는 관성을 깨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할지 그녀를 따라 생각이라는 걸 하고 싶어 진다. 독일에서 천일의 시간을 쌓아 올리는 동안 읽고 쓰면서 최소한 내 위치와 한계를 파악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게 된 것처럼. 은유 말대로 밑 빠진 독에 미련스럽게 어떻게든 쓸 시간을 확보해서 썼더니 가물에 콩 나듯 흘러 넘침도 맛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잠깐의 흘러넘침이 사유의 한 조각으로 내 몸 어딘가에 새겨졌기를 바란다.
2년 전부터 부지런히 찾아 읽은 그녀의 문장과 책에 실린 글은 확연하게 달랐다. 밀도와 촘촘함이 2년간 고친 만큼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다듬은 딱 그만큼 좋아졌다. 그녀가 읽은 책에서 인용한 글은 퍼즐처럼 적합하게 글에 녹았다. 그림으로 치면 덧칠이나 수정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한 번에 그린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녀에게 다가온 말들에 잘 어우러진 글 덕분에 한 동안은 허기지지 않고 기분 좋은 충족감을 맛본다.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슬픈 인간, 아픈 몸을 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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