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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

책 제목인 <온 더 무브>는 올리버의 친구이자 시인 톰의 시 제목이다. On the move <나아가는 삶>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저자의 삶은 때로는 침체되기도 하지만 도약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다고 감히 말하겠다. 자서전이란 게 어떤 것인지 이 책을 보면서 생각했다. 한 사람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가 주로 살았던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 중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지적 교류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잠시 스쳤지만 배움을 일으켰던 인연도 세심하게 썼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의사이자 이야기꾼이셨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제들에 대한 생각도 진솔하게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비중도 크다.

 

<깨어남>이라는 올리버의 초기작을 읽고 톰이 자신의 성장한 부분을 애정을 담아 편지에 쓴 아래와 같은 구절은 올리버가 충분히 감동할 만하다.

 

그리고 솔직히 네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어. 그런 자질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 연민의 결핍이 곧 네 관찰력의 한계라고 믿었지. 그때 내가 몰랐던 건 인간애라는 것이 사람이 삼십대가 될 때까지 성장이 유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야.(…) 네 글쓰기 스타일 자체도 인간애가 지휘하고 있어. 그랬기에 그처럼 벽이 없는, 그토록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거야.”(852~853)

 

두뇌에 매력에 외모에 유머감각에

처음부터 끝까지 숨이 멎을 만큼 놀라운 글이었어"

너 자신에 대한 믿음은 네 스스로 꽉 붙들어 매야 해"

조카인 올리버의 글에 때로는 열광적인 반응을 때로는 힘이 되는 피드백을 준 레니 이모와 편지를 주고 받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독일어 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브레멘 중앙역 5번 승강장에서 코를 박고 읽었던 인공호흡기 같은 책이다. 숨 막히는 밀폐된 곳에 있다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 가슴이 확 틔어지는 것처럼. 숨 쉬듯 말하는 모국어의 소중함을 모른 체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책을 읽다보면 찡그려진 얼굴은 저절로 펴졌다.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반해서. 이성보단 동성에 매력을 느낀다는 자신에게 보통의 엄마가 할 만한 말들. 마약에 빠졌던 경험은 일찍부터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암스테르담에 마음이 가고 종종 그곳에 들러 자유를 만끽한다.

 

이방인, 스스로를 화성의 인류학자 같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영국인이지만 뉴욕에서 대부분의 시절을 보냈다. 뇌신경학자로서 자기 분야에 충실할 뿐 아니라 환자에게 인간애를 발휘하고 그 모습은 그의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쓰는 것을 좋아해서 많이 쓴 만큼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들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성찰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것도 참 잘한다. 그의 글에 매료된 이유는 성취나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 부끄럽게 생각되는 경험 등을 최대한 객관화해서 담담하게 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면서 알게 된다. 인생이란 빛나는 순간은 찰나고 힘듦을 딛고 다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