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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일급의 가이드가 이끄는 패키지 역사 여행

역사의 역사, 유시민 지음

 

역사에 까막눈인 나 같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게 하는 재주가 저자에겐 있었다. 그게 뭘까, 생각해보니 ‘역사 서술의 역사’ 중 핵심만 ‘통나무에서 젓가락을 뽑아내듯’ 진액만 가져와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주었다. 밥상을 차려 딱 대령하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염치없이 가만히 앉아서 맛있고 배부르게 먹은 것 같아서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역사의 서술에서 중요한 역사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 사람씩 친절하게 소개받았다. 아래의 내용은 저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중요한 부분만 추렸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인 세계사를 있는 그대로만 쓴 게 아니라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 형식으로 썼기에 무엇보다 재미있다. 아테네인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세계의 몰락을 부른 내전의 원인과 결과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전쟁과 내전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한다. 서양의 역사에서 위 두 역사가를 꼭 알아야 한다면 동양에선 인간 존재의 모순뿐 아니라 인간 권력과 시대를 풍경화처럼 그린 사마천이 있다. 그가 쓴 역사는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구원했다.

 

 

그에 비해 랑케는 19세기 유럽의 역사학계를 사로잡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그저 있던 그대로 서사 없이 어렵고 재미가 없어서 문서고에 잠들어 있다. 랑케는 안타깝게도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는 춘추필법이 부족했다. “지나간 시대에서 사실의 시신을 건져” 올렸지만 시신의 인생행로를 추측하는 것엔 실패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케에서 배워야 할 것은 중요한 인식의 오류를 극복하며 19세기 중반 서구 역사학이 꽃피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을 지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을 지독하게 혐오했으며 그만큼 간절하게 계급적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원했다.(356쪽)” 그가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그 시절 종교적 광신에 버금가는 열광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조선 민족주의 역사학의 세 갈래를 대표하는 역사가는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꼽는다. 박은식과 신채호의 역사 서술은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민족이 당한 아픈 역사를 재현했다. 민족의 정체성을 인식하려면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며 자주적 민족의식에 입각한 <조선상고사>를 남겼다. 조선 사람들의 해방 투쟁을 세세히 기록하고 민족성 자부심과 자주성을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과거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했다. 이들 덕분에 아픈 역사를 인식할 뿐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국제 관계의 서글픈 현실을 자각한다.

 

 

“그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 보라는 카”의 말을 적용해보기에 적당한 인물은 바로 여전히 낯선 이슬람인 할둔이다. <역사 서설>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신앙 고백은 바로 종교와 결합한 권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인류사를 쓴 할둔은 도전과 응전, 미메시스와 네메시스라는 개념은 토인비와 닮은 구석이 많다. 탁월한 역사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문장가다. 문명을 단위로 역사를 연구한 토인비는 문명이 응전(상대의 공격이나 도전 따위에 맞서서 싸움)에 실패하는 것은 창조적 소수자가 인간의 본성에 따라 창조성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막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현대의 인류사를 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가 있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각 대륙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 때문” 이라며 유럽인들의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자아도취에 얼음물을 끼얹는다. 환경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며 과학과 역사의 융합을 꾀했다. 이스라엘 태생의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과거보다 여러 면에서 점점 더 많은 힘을 갖게 된 인간이지만 과연 과거보다 현재 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답한다. 신이 되려는 사피엔스의 미래를 심하게 걱정하면서.

 

 

일급의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역사 여행을 경험하니 언젠가는 자유 여행을 떠나 좀 더 꼼꼼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들을 만나면서 2019년 현재를 사는 내게도 동일하게 느낄 ‘인간적 도덕적 감정’뿐 아니라 ‘다시 재현될 역사’가 무엇인지도 감히 짐작해본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라는 카의 말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