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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예술 수업, 오종우 지음

 

 

 

제대로 된 예술 수업을 한 권의 책으로 흠뻑 맛보았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예술을 논한다. 러시아 문학이 무엇이길래,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된다. 러시아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철학까지 두루 섭렵한 그의 지식세계가 놀랍다. 인문학적인 통찰이 뛰어날밖에. 글이 쉽게 쏙쏙 들어오길래 찾아보니 강의 잘하기로 꽤 소문난 성균관대 교수다. 훌륭한 전달자고 해석자다.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예술을 자기만의 언어로 펼쳐놓는다.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예술의 인문정신을 발견했다.

 

피카소의 독창적인 작품은 바로 전문적인 수련(아비뇽의 여인들은 809번의 스케치에서 탄생, 91살까지 5만 점의 작품)과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새로운 생각은 전문성이 결여된 채 기교만 부린 게 아니다. '바른 생각과 정직한 자세'가 갖춰지고 정교한 수련을 통해 때가 되면 절로 길러진다. 게다가 뻔한 생각, 경직된 사고는 덜어내야 한다. 내가 아는 게 얼마나 미미한지 겸허함을 장착하고 아이 같은 눈으로 호기심을 발동시켜 세상을 바라보고 질문한다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선이 생긴다.

 

그렇다면 예술적 상상력은 어떻게 인간답게 살게 할까? 그것은 바로 예술과 인간이 처한 환경과 시대에 따른 행동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훌륭한 작품을 통해 길러진 다르게 보는 시선 혹은 해석하는 능력으로 깊고 넓어진 생각은 삶의 질을 높인다. 난관앞에서 길을 찾기도 한다. 예술을 통해 창의적인 해석 능력을 배우는 거다. 무뎌진 감각을 살리는 것과 통한다. 무기력해진 순간에 들은 음악 한 곡 훌륭한 작품 하나가 지친 마음을 위로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된다. 예술의 힘을 이 책에서 확인한 셈이다.

   

나는 실질 세계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글로 쓴다. 쓰는 시간은 여분 세계에 속한다. 원시인들이 들소를 관찰하고 벽화로 남겼더니 들소를 더 잘 사냥하게 된 것처럼.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감각이 살아나 감탄이 잦으면 살만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나만의 여분 세계에서 충전한 에너지로 실질 세계를 산다.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절망하지 않는다지만 꿈이 희망으로 존재하는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이 있어야 꿈을 현실로 끌어내릴 힘도 생길 테니까. 일상은 예술이 있을 때 더욱 풍부해진다. 꿈과 현실, 예술과 일상, 실질 세계와 여분 세계는 서로 보완적일 때 빛난다.

 

“예술을 논하면서도 예술작품을 닮은 글이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예술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고민하고 사유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났다. 글 사이에 넣어둔 작품과 곁들인 설명은 작품을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가깝게 느끼게 도왔다. (형식의 힘인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은 인문학적 통찰로 하모니를 이룬다. 저자가 이 책을 구상한 봄밤에 들었던 색소폰 사중주가 품격 있게 책 전반에 녹아 내게도 스민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eugeney77#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