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토록 많은 사건과 전쟁이 있을 수도 있나? 20세기를 온전히 산 드러커의 생애와 그가 만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양 역사를 들여다 본 느낌이다. 드러커가 말한 사회 초상,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을 통해 드러커의 관점을 읽었다. 자신의 생애에서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구경꾼' 드러커를 거치면 그럴듯해진다. 관찰력, 통찰력이 뛰어나고 거기에 더해 문필력까지 갖추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관계한 사람들에 대한 촉수가 예민하게 발달했다. 스스로를 타고난 구경꾼이라고 말하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고 한 것처럼 드러커는 유독 잘 관찰하고 사람들의 개별성을 잘 그려낸다.
699페이지라는 엄청난 두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래의 세 곳이다.
유쾌하신 할머니
드러커는 할머님부터 심상치 않다. 드러커의 교양과 예의는 할머님을 통해 배운 모양이다. 그의 예술적 감수성은 할머니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를 확실하게 보여주신 분이시다. 할머니의 강점 테마는 포괄(포용)이 아닐까?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운전수가 처할 어려움을 본능적으로 감지하시고 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를 하시는 모습에서 지혜가 엿보인다.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지혜, 할머니라고 해서 모두 다 그렇게 지혜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순박함과 고지식함, 우둔함에 폭소를 터뜨렸다.” 손자의 표현에 의하면 폭소를 터트리기에 갖추어야 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분이시다. 지혜로움은 어떤 학위로도 따라가지 못한다. 스스로를 ‘미련하고 멍청한 늙으니’라고 표현하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헤메와 게니아
“두 사람 모두 찬란한 지성과 독창적인 사고, 빛나는 아름다움의 결합체였다.”드러커가 이렇게 찬미의 표현을 하다니! 게니아 살롱의 무대에서 어린 나이에 데뷔한 드러커는 차별이 없고 조화를 추구하는 ‘게니아 살롱’에 대해 자신을 사로잡았던 <닐스의 이상한 여행> 에 나오는 아틀란티스 대륙이란다. 헤메와 게니아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듣고 토마스 만도 만난다. 드러커의 자서전을 쭉 읽다보면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드러커는 이 책에 다룬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은 프로이트뿐이라지만) 훗날 드러커의 경영이론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말고 할 일을 지시하라’는 게니아의 좌우명은 멋지다. 십대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그들이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드러커, 그는 자신의 삶을 무진장 사랑한 사람이며 어떤 조각도 놓치지 않는다.
엘자와 소피(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미스 엘자는 공부에 필요한 규율과 계획을 세우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전수했다.”
“결국 미스 엘자와 미스 소피가 내게 가르친 것은, 교육과 학습이 대단히 수준 높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이다.”
“그 동안 나는 실수를 통해서 배운 것이 없었다. 성공만이 내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
드러커가 다방면에서 학습을 통해 성과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엘자와 소피라는 참 괜찮은 선생을 일찍 만났기 때문은 아닐까. 드러커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스승을 만난 것은 축복이다. 드러커는 선생님에 대해 분석하고 자신이 배울 것이 무엇인지 인식했다. 같은 자매이지만 확연히 다른 엘자와 소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게 정리했다. 사람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배우고 의미를 건져 올리는 일은 드러커의 타고난 강점같다. 게다가 교육과 학습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페가수스 비유를 인용할 땐 감탄했다. 경제, 경영뿐만이 아니라 교육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하긴 드러커의 관심 분야는 넓고 깊다.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높이는 방법도 당연히 잘 안다.
지성, 드러커의 힘!
드러커, 이 분(갑자기 '분'으로 바뀜)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가? 일명 약점이란 것이 있긴 있나? 악필 말고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상당히 다양한 방면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한 인간이 그럴 수도 있나?' 신의 불공평함 뭐 이런 것도 느낀다. '뭐 이렇게 똑똑해?' 드러커가 만난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은 탁월하다. 감각과 직관이 고루 균형적으로 발달된 사람이다. 탐구심, 사고력, 분석자, 학습자 뿐만 아니라 이론을 통합하고 과거의 어떤 사건을 현재의 것과 연결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딱! 내놓는 것도 그렇고. 드러커는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사회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자신에 대한 성찰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잘 정리했다. 자신이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그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과 생각을 말한다. 자서전 같지 않은 자서전이다. 드러커가 살아온 시대와 사람들을 대단히 훌륭한 구경꾼이자 관찰자를 통해 읽었다. 내가 잘 몰랐던 20세기를 그를 통해 세밀하게 여행한 셈이다. 엄청난 분량의 책이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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