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연지원의 <플라톤 강독회 황금빛 아테네 중 카르미데스>를 듣고 정리한 글입니다.
카르미데스가 생각하는 절제란
1) 차분함
2) 부끄러움
3) 자기 할 일을 아는 것
절제란 무엇인가?
내(유진)가 생각하는 절제란 참는 것. 낭비하지 않는 것. 하고 싶어도 유익하지 않으면 참는 것. 쾌락을 즐기고 싶은 것을 억제하는 것. 혹은 쾌락을 잘 즐기기 위해 먼저 할 일을 하는 것. 예를 들면 오후에 마음 편하게 쉬려고 오전에 공부나 글쓰기를 끝내는 것.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다하지 않기다.
미덕이란 무엇인가
미덕의 결과는 안 좋을 수 없다. 좋지 않으면 미덕이 아니다. 미덕은 늘 좋다. 훌륭하고 아름답다. 하나의 미덕만으로 지혜에 도달하기 어렵다. 삶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영역이 만족되어야 잘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이 쉽지 않은 이유다. 경우에 따라 좋고 상황에 따라 나쁜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예를 들면 예의, 신중, 겸손, 정직, 감사, 절제, 우정, 사랑 등 모두 좋은 것들이다. 사랑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랑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이다. 사랑은 배려고 인내다. 미덕은 행복하고 가치 있는 것이고 고통스럽지 않다. 고유한 정의를 갖는다.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본질을 말해야 하는데 상황마다 달라지는 속성을 말하는 우를 범한다. 카르미데스도 마찬가지. 모든 미덕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속성)
<미덕이란 무엇인가> 자자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절제란 가능한 적게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다. 슬픔이다. 금욕이다. 물욕이다.” 절제는 기쁨이고 쾌락이고 능력이라는 것이다. 몽테뉴, 절제란 쾌락을 가장 감미로운 상태로 맛보게 한다.
일상적인 미덕인 절제
절제는 확실한 미덕이다. 절제를 제대로 알고 나면 용기와 다른 일상적인 미덕이란 걸 알게 된다. 용기는 항상 필요한 미덕이 아니다. 항상 두려움(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정직이든 사랑이든)을 느낀다면 사는 게 힘들 거다. 절제는 간헐적으로 필요하지 않고 항상 필요한 미덕이다. 절제는 언제 탄생할까. 욕망이 있을 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린 모두 욕망하는 존재다. 절제에 대한 오해는 아주 만연하다. "절제해라"라는 뉘앙스가 뭔가를 하지 말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즐거움을 포기하라는 것 같고. 이 오해를 덜어내는 게 절제를 이해하는 종착점이다. 뭔가 억압하는 느낌이 있어서 가치를 제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덕이다.
규율을 중시하는 나(유진)에겐 마음속에 나만의 규율이 적은 표가 있다. 매일 공부 한 시간, 집필 두 시간, 채식 위주 식사, 산책 한 시간, 요가 20분. 이건 목표 지향형의 규율이다. 욕망 절제형의 규율도 있다. 규율을 중시하는 의무 중심의 사람과 자율을 중시하는 소원(항상 소원을 추구하다 보면 절제를 못해서) 중심의 사람은 서로 다르다. 규율과 자율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규율을 통해서 자율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이 쾌락을 확장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보다 자유롭고 깊이 있게 향유(즐기고 경험하는 것)하게 만든다.
절제, 쾌락의 노예가 되는 대신 쾌락의 주인으로 살게 만드는 미덕이다. 욕망의 제거가 아닌 욕망의 부작용(장, 단점을)을 인식하는 힘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주말에 TV 보는 것, 한 시간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상 보면 후회한다. 싫증과 후회는 절제를 표시하는 하나의 징표다. 후회나 싫증이 오기 전에 인지해서 절제하는 것. 무감각하면 절제가 필요도 없다. 탐미주의자, 쾌락주의자일수록 절제가 더욱 필요하고 절제할 때 총합으로 보면 쾌락을 깊이 누리게 만든다. 욕망의 제거도 추구도 아닌 욕망이 있는 곳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발현되기 전에 자기를 아는 것. 후회와 싫증이 일어나는 지점의 자기 이해! 욕망이 없다면 절제가 불필요하고. 반대로 욕망만으로 우리의 행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절제라는 미덕으로 제어될 때 극대화된다. 결국 절제는 제대로 오랫동안 즐기게 만드는 기술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욕망이 있다. 자신에게 적절한 규율을 강요시키는 것, 그 지점을 아는 것이 절제다.
절제의 목표
쾌락의 극대화(쾌락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쾌락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 취침시간만 봐도 내일을 위해 절제하기보다는 오늘을 누리겠다고 합리화하는 사람은 늘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오는 결과다. 쾌락만 추구해도 마찬가지. 규율만 추구하면 싫증과 후회가 온다. 규율도 자율도 단독으로 삶을 아름답게 이끌지 못한다. 절제는 극기의 극치가 아니라 한계의 존중이다. 절제, 후회와 싫증에 대한 감각으로 자신에게 규율을 부여하는 힘이다. 쾌락의 극대화 지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행복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절제를 제대로 알고 배워라. 절제의 본질을 알면 오해가 걷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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