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하고 수업하다가 뒤셀도르프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뒤셀도르프에 아시아인이 많이 산다. 일본 회사가 많고 일본 식당도 많아서 뒤셀도르프에서 라멘을 꼭 먹으랄 정도다. 직접 가보니 일식당이 진짜 많았다. 일본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한국인도 많단다. 하나로 마트도 있다고 들었다. 알고 보니 광산이 있던 곳으로 광부로 왔던 한국인의 2세가 꽤 산단다. 독일에서 태어난 경우에 모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다섯 살에 독일에 온 작은아이만 봐도 한국어가 턱없이 부족하다. 여덟 살인 딸은 한국 책 보다 독일어 책을 선호한다. 쇼팽도 프랑스인이지만 얘들은 모두 독일에서 태어나서 딸아이는 프랑스어를 하지만 다른 아이는 못한다는 얘기를 했다. 지난번에 본 쇼팽의 손녀를 아는 척하면서 그 아이가 딸의 아이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딸이 한 명인 줄 알았는데 또 한 명의 딸이 있었다. 그 손녀가 죽은 딸의 아이였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잠시 얼음이 되었다.
수업 내내 내 기분이 가라앉은 걸 알아챈 쇼팽이 슬프냐고 하길래. 조금, 너의 딸이 죽었다고 해서 슬프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나는 말해버렸다. 십 년이나 된 걸. 10년 전에 서른 살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살아있었으면 올해 서른아홉 살이었을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그 모습이 더 짠하다. 서른 살이 된 자식이 죽을 수도 있구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도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구나. 죽음이 뭔가. 인생이 뭔가. 무서우면서 숙연해진다.
그래도 주어진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나는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장을 보다가 마침 마리타의 친구를 만났다. 거의 2년 만인 듯하다. 스포츠센터를 옮기기 전에 같은 곳에 다니며 알게 된 마리타의 친구다. 그사이 눈에 띄게 많이 늙으셨다. 하긴 마리타의 친구면 칠십 대일 테니 당연하겠지만. 그사이 어디가 아프셨는지 유독 더 쇠약해 보인다. 바퀴 달린 지지대, 마리타도 돌아가시기 전에 저걸 끌고 다녔다. 장도 보고 산책도 함께 했던. 눈 깜박임이 잦고 얼굴은 많이 야위셨다. 마리타가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고. 우리 집 작은 애 이름을 묻는다. 마리타가 예뻐했던 그래서 자주 이야기했을 딸을.
자연의 순리인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에 섣부른 동정이나 연민의 눈길을 보내면 안 될 테니 씩씩하게 안녕을 고하고 장만 열심히 봐서 나왔다. 조금만 더 마주했다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지도 몰라서. 비 온 뒤 노란 나뭇잎은 어느새 떨어져 바닥에 지들끼리 찰싹 붙어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그 길목에 있는 찬란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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