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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가족간엔 더 어려운 비폭력대화

비폭력대화를 읽는 이번 달 내내 좌절모드다. 어제도 그제도 실패. 나의 의사소통 방법이 얼마나 엉망인지 자각한 책. 당장 어제 아이 데리러 갔다가 있었던 일. 뒷문에서 기다렸는데 정문으로 나온다길래, 첫날보다 2분 먼저 도착해서 뒷문을 지나 정문으로 갔다. 기다린 지 10분이 다 돼 가는데 딸은 보이지 않고 뒷문과 앞문을 왔다 갔다 하며 봤는데 없다. 결국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딸은 없고 모두 갔단다. 이런, 물론 혼자 집에 가더라도 길은 아니까 괜찮지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아이를 놓칠 리가 없는데.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분명 말했는데. 걱정되다가 집에 다다를 즈음에는 짜증도 난다.

 

아이가 무사히 집에 있으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니 짜증이 확 치민다. 집 열쇠도 없으니 딸은 가방만 집 앞에 두고 다시 엄마 찾으러 나왔다가 집 앞에서 만났다. 울먹이며 안기는 딸을 건성으로 안아주면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왜 아이를 충분히 위로하지 못하는가. 공감은 커녕, 위로도 못한다. 약속대로 기다리지 않고 걱정하게 만든 게 화난다. 나는 정문에 있었는데 아이는 뒷문으로 나와 엄마가 없으니 조금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온 거다.  쓰고 보니 별일 아닌 일에 과도하게 화를 냈다. 젠장.

 

아이가 오히려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었을 텐데,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210쪽) 타인에겐 잘 되는 공감이 가족 간에는 어렵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다음부터는 엄마랑 약속을 했으면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나. 이렇게 엇갈리면 서로 걱정하게 되니까. 아이한테는 원하는 걸 징징거리면서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면서 정작 나는 원하는 것을 건강하게 말하는 법을 모른다. 욕구를 자주 왜곡하거나 상대방을 탓한다. 인내심과 어휘력이 부족해서 징징거림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셈.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화부터 내기 일쑤. 아예 습관이 되었다. 느낌이나 욕구를 먼저 말하는 일보다는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마셜 B. 로젠버그가 말하는 비폭력 대화는 살색 책 겉표지에 친절하게 쓰여있다."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그 말 뒤에 있는 느낌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듣게 해주는 대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의 목적은 서로 공감하면서 질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비폭력대화에서는 특정한 결과를 얻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각자의 욕구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하여 모두의 욕구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의 언어 습관을 파악해보니 긍정적인 언어 사용하는 사람의 영향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밖에선 칭찬과 지지를 집에서보다는 받았다. 예를 들면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에서. 집에선 구박받기 일쑤. 사람이 욕을 가장 먼저 배우는 것과 같은 원리로 밖에서 받은 칭찬과 지지는 금방 휘발되고 자기 비하와 비난 부정적으로 받았던 말들이 화석처럼 굳어졌다가 가까운 사이에서 바로미터로 나간다. 가까운 부모의 영향을 아이가 가장 많이 받는 건 맞다. 말투나 언어 습관, 아이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부모의 언어 습관이 어떤지.

  

내 의사소통 방식은 비폭력 대화에서 말하는 것과는 정확히 정반대다. 가끔 만나는 사람과는 비폭력대화가 가능하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부대끼며 사는 가족 간에는 불가능. 특히나 육아 환경에선 더 어렵지 않을까. 핑계일 수도 있지만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우아한 비폭력대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울화가 치미는 상황이 반복이다. 코로나로 집에 오래 같이 머물면서 더 심해졌다 스트레스 상황은 맞다. 애들이 크면 큰 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오누이와 부딪히는 상황에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힘들다. 그건 남편과도 마찬가지. 공감하고 이해하고 느낌과 욕구를 읽어주는 일이 어디 쉽나. 이론과 실천의 간격이 어마어마한 게 바로 비폭력대화. 

 

상대방을 관찰하고 자신의 느낌을 말할 때도 욕구를 알고 말해야 하고 게다가 긍정적인 언어를 쓴다는 게 어디 쉽나. 어렵다.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배운다고 될까. 특히나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 공감을 하고 느낌을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 특히나 자녀나 남편과의 관계에선 비난과 강요 명령이 주를 이룬다. 그뿐 아니라 협박(시간 지키지 못하면 다음 날 핸드폰 압수)과 취조(왜 그랬니? 어서 말해봐)도 빈번하다.

 

실패하더라도 자기 비하, 자기혐오에 빠지지 말고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에게 공감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은 위안이다. 절망스럽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타인을 돌보느라 에너지를 소진했을 수도. 혹은 제대로 된 공감을 받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저절로 습득한 대화법이 아니라 집중해서 배우고 적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폭력대화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일지도. 제목과 달리 은근히 폭력적인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