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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오늘 생각

그때 그 시절 메리를 애도하며

 

어릴 적 시골에서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두 손안에 거뜬히 들어오던 따뜻하고 물컹한 작은 생명체가 어미가 없어서인지 쉼 없이 떨고 있는 모습에 내가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인데 내가 지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그 생명체의 애정은 각별했고 오히려 받은 게 더 많았다. 

 

개뿐 아니라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껌뻑이며 되새김질하며 침 흘리던 소. 낮에 논두렁으로 끌고 가서 풀을 뜯겨야 됐던 염소까지, 닭은 키우지 않았지만 소, 개, 염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던 시골 할머니 댁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중 가장 가깝게 교감했던 동물은 당연히 멍멍이. 메리라는 그 흔한 이름도 내가 지었다. 맹목적으로 주인을 따르고 좋아해 준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마지막의 메리는 목덜미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컸을 때니 몇 년은 동고동락한 거다. 그러고 보니 독일 오기 전 5년간 살던 동네의 주말농장 주인집이 키우던 백구와 비슷하다. 토종 진돗개는 아니지만 영리했다.

 

그랬던 메리를 며칠 째 잃어버렸다. 한참만에 돌아온 메리는 다리를 쩔뚝거렸다. 그 당시 산에 덫이 많았을 때인데 추측해보면 덫에 걸려서 며칠의 사투 끝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집으로 돌아온 거다. 상봉만으로도 기뻤지만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될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당연히 치료는 못했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처량하게 앓던 개가 다시 없어졌다. 메리가 사라진 날 갑자기 마당의 큰 솥에서 뭔가를 오랫동안 끊였다. 어른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이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심정은 참담하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엄마를 잃었을 때만큼 컸다. 내가 유일하게 심적으로 의존하던 존재였기에. 솔직히 엄마가 죽은 건 내가 너무 어렸을 때라 슬픔의 감정조차 알지 못한다. 이후 그 어떤 개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 걸로 상처는 묻혔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 큰 아이반 친구가 한국에서 온 아이에게 제일 먼저 물었던 건 한국사람은 개고기를 먹는다면서? 였다. 모든 사람이 먹진 않지만 먹는 사람도 있으니 아이는 우린 먹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좀 창피했다고 했다. 아들은 그 친구에게 넌 베이컨 안 먹니? 물었더니 자기 집에서 같이 살을 비비며 가족같이 사는 사랑스러운 개와 돼지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며 한참을 토론한 일화가 있다. 하긴 중국인이 박쥐까지 먹는다는 것에 기함하며 혐오하는 반응과 비슷한 선상일까. 메리 사건 이후에도 개고기만 먹지 않았을 뿐이지 오랫동안 소와 돼지 그리고 닭과 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2020년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내가 그토록 아꼈던 메리가 솥 안에서 푹푹 삶아진 것과 삼겹살, 닭갈비, 훈제 오리도 모두(애정 했느냐 불특정 다수인가) 동물이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나도 참 아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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