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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변화] 채식위주 식단을 꾸린지 1년만에

식탁에서 고기를 제거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 혼자 살면 훨씬 쉬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 또한 인식의 변화를 겪으며 시행착오를 거쳐 완전히 끊기까지의 시간은 필요하다. 과거의 식생활을 돌아보니 난 그렇게 육식을 즐기진 않았더라. 그래서 어쩌면 쉬울지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면서 다양한 야채 맛에 감동한다. 브로콜리와 파프리카 식감엔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12월 배추는 달달하고 아삭해서 그냥 먹어도 배추 된장국을 끓여도 맛나다고 감탄하는 순간이 잦다. 순댓국, 족발, 곱창, 돼지껍질 등 보기에도 혐오스러운 음식은 솔직히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다. 최애 육류 아이템은 삼겹살 정도. 

 

작년엔 기적의 밥상을 읽고 동물성 단백질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서서히 줄여갔다. 익숙한 무언가와 안녕을 고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 억지로 끊은 건 아니고 가족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한두 점씩 먹기도 했다. 그러다 신기하게 어느 날은 미역국에 넣은 쇠고기 냄새에 코를 막는 순간이 왔다. 가족 밥상에서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시작으로 닭고기는 어느 정도 허용하다가 올 하반기엔 요리도 완전히 끊었다. 가족 중에 남편이 제일 어렵다. 아이들은 그나마 어릴 적부터 습관을 들이니 쉽고 작은 아이가 큰 아이보다는 훨씬 채식 위주의 식단을 좋아한다. 고기를 즐기기 전에 딸은 이미 채소와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아버렸다. 거기에 더해 엄마의 변화된 인식의 힘을 보탰다. 큰아이는 가끔 치킨이나 돈가스를 원하면 해주곤 했는데 가끔 먹는 고기가 속이 좋지 않게 되거나 설사했다. 설사를 하더라도 먹겠다면 오케이, 지난달부터는 요리된 걸 사다 준다. 아들을 잘 살펴보니 본인도 서서히 고기가 좋지 않다는 걸 깨닫는 듯 보인다. 두부가 고기보다 훨씬 맛있다는 걸 보면.

 

제일 어려운 남편에겐 채식 이후 1년 동안 원하면 고기 요리를 해줬지만 칼자루 쥔 사람 마음대로 고기 사는 빈도수를 현격히 줄였다. 해주는 대로 먹는 편이라 가끔은 두부 요리의 신공을 발휘하며 지혜롭게 대처하기도. 단백질 식재료 중 두부가 떨어지지 않게 사두는 편인데 어느 날 마트에 두부가 없다. 남편이랑 장 보면서 고기 코너를 지나면서 김치도 있는데 목살 김치찜을 해줄까. 마음대로 채식을 고집하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고기 요리를 하지 않는 것에 이상한 죄책감이 들면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약해진 마음으로 삼겹살 한 근을 샀고 그날 저녁은 삼겹살말이 김치찜을 했다. 아들은 엄마답지 않게 고기 요리를 해주다니, 감격했다. 나도 오랜만에 푹 익은 묵은지에 삼겹살을 한두 점 먹으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후회는 금세 몰려왔다. 요리 후 냄비를 정리할 때 보니 기름기가 덕지덕지. 세제로 닦아도 쉽게 없어지지 않고 수세미에 엉겨 붙는 느낌이 영 기분 나쁘다. 이 기름이 내 몸 어딘가에 쌓인다고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바로 오누이와 남편에게 보여줬다. 지난달부터는 도저히 요리조차 하기 힘들다고 선언하고 먹고 싶으면 요리된 걸 사 먹던가 직접 요리하라고 말했다. 

 

저녁 독일어 수업 가는 날 몰래(본인이 먹는 건 그렇다 치고 애들 먹이는 건 좀 별로라, 내가 짜증 내는 걸 알고) 간 고기로 만든 동그랑땡 같은 걸 사다가 먹은 모양이다. 이제 애들도 그런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남편 혼자 다 먹으라니 난감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새 가랑비 젖듯 육식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지. 혼자 몇 덩어리 먹다가 결국은 반이상 남은 고기를 다 갖다 버리란다. 이런 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다니! 그래도 먹는 것보단 버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 남편의 변화에 내심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근 1년 만의 일이다. 그런 남편이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눈 뜨자마자 나한테 버터도 좋지 않다면서 먹지 말란다. 버터 줄인 지가 언젠데, 뒷북이다. 부드러운 빵과 달콤한 케이크엔 기본적으로 버터가 많이 들어간다. 곡물빵에 버터 발라먹던 걸 하지 않고 집에서 직접 만들 때도 비건 빵을 만든다.   

 

식생활에 있어서 만큼은 타협하지 말고 단호해야 한다.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읽으면서는 내 생각이 옳다는 걸 또 확인. 건강뿐 아니라 환경과 지구의 미래를 생각해도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확신을 가질 때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

 

탈육식과 도살장을 연결하는 [홍은전 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2993.html

 

[홍은전 칼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수년간 동물을 먹지도 쓰지도 입지도 않으며 동물이 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닙니까. 이것은 왜 범죄가 아닙니까. 이것은 왜 언어가 아니고 이것은 왜 저항이 아닙니까. 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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