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현재 그들의 남다른 시선을 빚어낸 유년시절,

그림책을 짓는 작가로서의 철학,

아이들과 소통하는 어른으로서의 마음가짐…

창의성의 실마리를 던지는 진솔하고도 경쾌한 이야기 틈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유효한 그림책의 힘을 전하는 인터뷰 집"

 

예술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참 예쁜 책이다. 제목에 ‘유럽’이 붙어서 멋지다. 책은 또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그림책, 작가, 창의력, 상상력, 유럽, 아틀리에 등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다 모였다. 작년부터 보고 싶어서 조바심내던 책이다. 책 소개와 목차를 몇 번이나 읽어보며 아쉬워했다.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사 왔다. 손에 들고 후루룩 넘겨 보기만 해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작가의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그녀(그)를 직접 보고 피겨와 그림 도구들이 가득한 작업 공간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작가의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그림책을 모아놓은 페이지는 하나하나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최혜진 작가에 대한 관심도 자동으로 생겼다. 10년 동안 피처 에디터(패션이외의 정치, 시사, 문화, 스포츠, 문학 다양한 분야를 아우러 글을 쓴다. 글만 잘 써야는게 아니라 트렌드 감각이 있어야 가능)로 일했고 10년 차가 되던 해에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이사해서 3년간 살면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 만든 책인 모양이다. 그림책 작가를 만나 던진 질문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진’ 경험이 있었다.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각별해진 질문 덕분에 진솔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작가마다 삶의 맥락이 다르고 그림책 작가로 살아가는 여정이 자부심이 넘치고 창의력과 상상력에 대한 조언도 자기다움이 느껴졌다.

 

저자는 프랑스에 살면서 서툰 불어 덕분에 프랑스의 한 서점에서 ‘글 언어와 그림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그림책의 위력을 체험한다. ‘창의성이라는 말에 주눅 드는 어른들에게’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렸으나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가치들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6708km를 달려 그림책 작가 10인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주입식 교육에 길든 한국의 보통 사람으로서 본인도 스스로 궁금했던 질문들을 들고 유럽의 작가들을 직접 만난 이야기다. 공감의 쓸모, 작은 용기, 치유하는 상상 등 10인의 작가별 테마, 목차도 아주 근사하게 뽑았다. 유럽의 공교육을 받은 작가들 조차도 창의력은 주로 학교 밖이나 쉬는 시간에 길러진다는 부분은 의외다.

 

이들에게 얻는 팁으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적용할 부분이 뭐가 있을까. 물론 아이보다 급한 것은 나겠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창의성이 웬 말인가. 특정인의 산물인 것처럼 한계 짓지 말고. 아이와 더불어 창의적이고 상상력 빈곤하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싶어진다. 여섯 살 딸에게 크레파스 대신 붓을 쥐여주고 더 많이 깔깔대며 아이처럼 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 간섭 말고 자유와 심심함을 허하고. 텔레비전보다는 당연히 책이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로움과 놀라움을 경험하거나. 유년기의 추억이 밝았으면 좋겠다.  

 

열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창의력과 상상력과 연관된 것들이면서 동시에 삶이 더욱 빛나는 데 필요한 요소다. 하긴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면 삶이 지루하긴 어렵겠다. 좀 더 유쾌한 삶을 위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힘이 아닐까. 유년시절이 밝았든 그렇지 않았든 이 책에 나온 작가들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그림을 그리며 산다. 타인의 시선보단 자신만의 인생 계획표대로 움직이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멋진 작가들만 모아둔 느낌이다.

 

작가들이 인터뷰에서 주옥같은 말들도 참 마음에 든다. 딸 ‘아델’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고백하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된 퐁티는 여전히 집 뒤뜰에서 그네를 타고 흙장난을 치며 논다. 일상 속에서 신선한 관점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노는 능력을 잃지 않는 거라면서. 이렇게 예술적인 표현도 했다. “바람직한 부모 자녀 관계는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같아야 합니다. 지하수로 연결되어 소통은 하지만 서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죠.”(p118) 스무 살에 이탈리아로 건너와 45년째 프랑스에 거주하며 독학으로 그림 연습을 한 일본인 작가 이치카와 사토미는 “시간을 더 보낼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마음은 시간이라는 효소가 더해지면 더 잘 부풀어 오른답니다.”(p271) 창작의 시작은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면서.

 

'작은 용기 내기 습관'을 강조한 세르주 블로크는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유쾌한 아빠다. 아이 덕분에 동심을 회복했고 아빠라서 바보처럼 놀 권리가 생겼다며 천진하게 웃는다.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해보는 것을 허락하는 마음, ‘왜 안 되겠어’하는 생각, ‘실패해도 괜찮아. 별거 아냐’라고 말해주는 자세. 이것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예요.”(P145) 미소가 아름다운 키티! 엄마로서의 철학도 마음에 든다. “엄마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아이 덕분에 엄마로 만들어지는 거라고요.부모와 자녀의 만남은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겁니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61)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림책 한 권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어서 맛보고 싶어서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린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쌓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