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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영화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아주 작은 차이

 

독일 여성 15명 인터뷰한 내용인데 아주 리얼하다. 아무한테나 털어놓기 어려운 은밀한 속내를 용기내어 말했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점이 놀랍다. 최대한 보편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폭넓게 듣기 위해 많은 사례들 중 골랐고 전문직 여성, 주부, 미혼, 동성애자, 매춘부까지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성의 이야기를 실었다.


<1970년대를 살아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형으로 생생히 다가온다. 국경, 계층, 세대가 달라도 여성의 고통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에 학인들은 사회구조가 낳는 여성-개인의 삶에 주목한다.>고 은유 작가가 글쓰기 최전선에서 소개한 이 구절에 반해 고른 책이다. 역시나 그 때에 비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한 것 아닐까 싶다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언젠가 나도 느꼈거나 혹은 갖는 감정이라 낯선 여성의 독백이 낯설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여자라는 사실이 싫었던 건 결코 아니었어요. 여자 몫으로 주어지는 일들이 싫었을 따름이지요."(221)

“그래, 도대체 너는 누구냐. 집안 청소 끝내 놓고 멍하게 앉아서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너는 대체 누구냐.(31)

“나한테 의미 있고 절실한 것은 누구누구의 마누라가 아니라 뭐라도 나 자신이 손수 이룩한 어떤 것이었어요.(35)


 “인간은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길들여진다.” 시몬 드 보봐르의 말을 보란 듯이 열 다섯명 여성의 사례가 입증해준다. 외로워서 결혼을 하든 남들이 애인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든 남자에게 의존해서 사는 사회 구조가 당연하다는 듯이 거기에 맞추어져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나라고 예외라고 말하기 어렵다. 버려질까 두려워 참고 혼자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까지 있으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줄어든다. 결혼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은 아닐진대, 바깥 활동을 못하게 막거나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부리며 길들인다.


설마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아주 작은 차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만들었을리 만무하지만. ‘그럴리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아무리 70년대라지만 그것도 독일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도 착취당하고 남성에게 의존적이며 자신감없이 살았다는 것이 믿기 어렵고 한편으론 위안이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여자 아이의 경우, 어릴 적엔 '~하지 마라'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듣고 살다가 결혼을 하면  '~해야 한다.'는 의무가 왜 이렇게 많은지 정신 못 차릴 정도다. 아이라도 낳게 되면 스스로 들볶는 의무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집안에 여자가 잘 못 들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 봐도 여성의 존재가 필요에 따라 여기 저기에 붙이고 동네북마냥 두들겨진다. 이런 분위기는 여성이 자기 혐오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좋은 엄마, 아내, 며느리까지 되지 못하면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에 휩싸여 산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어서 인지몇몇 여성의 '자기만의 방'이 유독 눈에 띈다. 자신이 처한 힘든 환경을 성찰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방을 갖거나 혹은 강력히 요구한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갖겠다고 선언한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나누며 동일한 환경에 처한 여성들을 만나 토론하며 여성의 문제를 공론화해서 변화를 꾀하거나 해결점을 찾도록 돕는다 


 “그러나 여성은 결코 약하지 않다. 보기보다 훨씬 강하고, 지나놓고 보면 더욱 강하다. 지독한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 그 저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너그러움과 지혜 그리고 넉넉함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난 여성들은 정말 아름답고 신비하다. “여성들의 보편적 삶의 단편들이다.”(21쪽) 여성들 삶의 일부분을 보여준 것 뿐이라는 말이 다행스럽다. 지구상에는 이 책에서 보여준 사례처럼 암울한 여성들만 사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남편에게 종속된 관계로 살거나 의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며 나의 의존성을 돌아본다.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해주었다고나 할까.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안주하지 말라고. 그럴듯한 합리화로 희생하지 말자고.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을 규정하는 패턴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인적 성향이나 욕구에 따라 각자의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여자와 남자 모두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295)저자의 원대한 꿈이 국경과 세대와 인종을 초월해서 부디 이루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