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그리고영화

앤 라모트의 유쾌하고 다정한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의 유쾌하고 다정한) 글쓰기 수업

 

원제인 <Bird by bird>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에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느라 애 먹는 저자의 열살 된 오빠에게 작가인 아버지는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라고 말해 준다. 이 말은 글쓰기뿐 아니라 인생의 여러 영역에서 필요하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을 때도 내가 밟고 선 부분부터 차근차근 처리하면 어느새 깨끗해진 정원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초고를 쓸 때도 완성해야 할 책 한 권의 분량에 겁내기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 한 페이지를 쓰다 보면 채워진다. 할 일이 많아서 머리가 아프거나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를 때, 다이어리를 꺼내 할 일을 적고 하나씩 해결하며 목록을 지울때도 'Bird by bird'는 자주 떠오른다.

 

틈만 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읽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광고지에 딸려 온 아빠의 글에 대한 비평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가 보기엔 난해한 글들을 읽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욕구를 품게 된 앤라모트는 열아홉 살에 학교도 그만둔다. 자신의 이름이 책에 인쇄된 것을 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들뜬 마음을 갖고. 하지만 작가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고 절망한다. 작가의 험란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 이 책이 유쾌함이다. 앤라모트의 목소리가 막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는 마음 자세 그리고 출판이 되기까지 작가가 겪는 심경의 변화까지 낱낱이 말해준다. 예를 들면 짧은 글 한 편 쓰는 방법과 허접한 초고를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플롯 구성과 캐릭터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낼지 등에 관하여. 짧은 글 한 편 쓰는 방법을 개 껌에 비유하거나 쓰던 글 끝맺는 때를 압력밥솥에서 더 이상 증기가 빠져 나오지 않을 때라고 표현한 부분은 압권이다. 개에게 개껌을 던져 주었을 때 물고 빨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 글 한 편을 어떤 자세로 써야 할지 감이 온다. 개껌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지만. 글 쓸 때는 바로 개가 개껌을 물어 뜯는 자세로 하나의 주제로 제대로 파고 들라는 비유는 너무나 적절하다. 혹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만 보이는 것처럼, 2.5센티미터짜리 사진틀을 통해 사진을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쓰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선생답게 그녀의 유쾌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따라 읽으며 즐거운 수업을 받았다.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고픈 욕구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앉아 꾸준히 쓰는 일은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일만큼 성가시고 짜증 난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겨우 만나기 위해 다섯 페이지 반을 궁싯거리며 써야 하니까. 좋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토록 의미 있는 고통을 감내하고 쓴다. 결국, 최고의 작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글을 보는 안목은 높아지는 독자가 되는 보상을 받는다.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천진난만함과 경외심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마음 가짐은 세상을 살아갈 때 더 깊은 인생으로 이끌고 그만큼 글도 잘 써지지 않을까. 자신이 쓰는 주제에 스스로 깊이 몰입해서 쓰고 자신감을 가질 때 읽는 이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부분도 공감이다.  "내 생각엔 작가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고,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느낀 바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무엘 베케트처럼 위대한 통찰력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실전에선 기억에 도움이 될 만한 색인카드를 쓰는 법이라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단어 3백자를 쓰고 산책을 가라든가. 격려가 필요한 순간에 전화해서 약간의 공감과 위로를 받을 사람이 필요한데 작은 글쓰기 모임을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일년 전에 시작한 모임이 바로 이거다. 관대한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니 지속적으로 쓰게 하는 든든한 모임이다. 게다가 '조잡한 초고를 읽어주는' 예술 친구는  글이 좀 더 나아지게 하고 자신감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뇌암 진단을 받은 아빠와 친한 친구 패미의 죽음 앞에서 그 상황을 기록해서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절망적인 순간에 쓰기 시작한 글은 바로 자신을 구원하고 심연을 들여다볼 절호의 찬스가 된다. 현재 소통하거나 일어난 일을 쓰면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려 애쓰거나 그들과 함께한 표현할 길 없이 아름다워 보이던 순간들, 우리를 변화시키고 웅숭깊게 한 경험들을 기록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302)

 

글은 이미 쓰면서 충분한 보상을 받는 다는 것은 직접 해보면 알게 된다. 내 글이 인쇄되는 것을 욕망하지만 출판한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고 인생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녀의 고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잔치는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끝나서 허무해진다는 것까지.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중요하다. 아이의 유년 시절을 생생하게 추억하고 엄마를 기억해낸다면 충분하다며 첫 책의 원고를 끝낼 힘을 얻은 것처럼. "당신이 작품을 완성한 날이 당신의 생일보다 더 기쁠 것이고, 글을 쓰는 전 과정에서 기울인 헌신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