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정해진 지면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일목요연하게 하는 칼럼을 찾아 읽는다. 명료한 생각을 엿보고 싶어서 그렇다. 작년까지 한겨레에서 읽은 장희진의 칼럼은 매번 읽을 때마다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몇 번은 반복해서 읽어야 겨우 이해될까 말까 했다.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그녀의 생각이 강렬해서 끌렸다. 요즘은 은유 칼럼 애독자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일상에서 던지는 질문은 평범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 편하게 읽힌다.
지면에 실렸던 글들을 모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만난 황현산 글은 또 다른 맛이다. 문학 비평가지만 전공 서적이 아닌 책으로 첫 산문집이다. “사회와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가장 쉬운 말로 명확하게 쓰려고 했다. 문학이 사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들을 가장 쉽고 명석하게 기술할 수 있었던 게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 같다.” 중앙일보와 네이버가 공동 기획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책 서문에 쓴 것처럼 그의 글은 명확하고 때로는 아름답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밤이 선생이다> 제목의 의미가 뭘까. 알 듯 말 듯해서 오랫동안 되뇌었다. 이상하게 입에 착 감기는 이 제목을 어떻게 지어졌을까 궁금했는데 ‘밤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단다. 선생님은 산만한 낮보다는 밤이 훨씬 집중이 잘 되고 더 미룰 수가 없는 마지막 밤엔 어쩔 수 없이 일을 많이 하신단다. 또 다른 의미를 붙이자면, 고민이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흔히 해주는 "오늘 밤은 푹 자길 바래"는 힘든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다. 잠을 푹 자고 나면 또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바로 밤이 선생이라는 의미로 지으셨단다. 글 쓰는 사람에게 밤은 영감이 잉태되는 시간일테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보인다. 뭘 말하려는지 작가의 생각이 어렵지 않게 읽혀서 좋다.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회의 여러 영역에 대한 생각이 어른스럽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게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말하는 지혜를 보태면 예술적인 한방을 홈럼을 칠 수도 있다. 황현산 글에선 이와 같은 예술적 일침이 엿보인다. 시나 작품을 언급하길래 문학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무장해제 된 틈에 한방이 훅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핵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장착한 명확한 섬세함이 저절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청계천에 즐비했던 헌책방이 사라지고 덩달아 고서까지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상에 빗대어 ‘한번 낙오하면 영원히 패배하는 우리 교육 제도와 같다’는 말들. 알아도 감히 말하지 못한 말들. 지식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근본적인 패배주의를 부드럽게 지적할 땐 탁월한 영화 감독의 영화를 통해 이야기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교수들을 욕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교수인 본인도 피해가지 못한다.는 부분에선 자기 성찰과 객관적인 시선도 유지한다.
불문과 교수에 문학 비평가라지만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로서의 정체성도 읽혀서 인간적이다. 아내와 딸이 '시루떡처럼 쌓아두고' 읽는 만화책에 아까운 시간을 쓴다고 지청구를 주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빠져 읽은 후 쓴 <먹는 정성 만드는 정성>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212쪽)
목표에서 가까운 비금도가 고향인 선생님은 어릴 적 책이 부족한 만큼 활자에 대한 열망은 남달랐다. 학교에 비치된 백 권의 책이 전부였던 거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국문학도가 쓴 논문이 있었는데 논문에서 인용한 어떤 소설의 한 구절을 보고 시적인 분위기에 매혹된 기억도 있으시단다. 동네 어르신에게 무심코 읽어드렸던 고전 소설들을 읽으며 우리 말이 가지고 있는 흥취를 느끼고 표현력을 배웠다. 문학에 대한 열망도 그 때 그 시절에 무르익었다. 문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실한 어른이 조국을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는 마음이 글 곳곳에서 느껴진다. 시보다 더 시같은 문장들엔 감탄하고.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석연치 않은 것이 혀끝에 밟힌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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