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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life in Schwanewede

‘고마워’로 끝나는 편지

 

작년 10월,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작가 오소희의 고마워로 쓴 편지를 읽었다. 작가는 남편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을 맞아 모든 문장이 고마워로 끝나는 편지를 썼다. 편지엔 그들 부부가 켜켜이 쌓아올린 함께한 시간과 동지애에 대한 고마움이 읽혔다. “아이가 태어난 날 서른두 살의 당신은 얼마나 벅차고 두려웠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벅참이 일상의 자잘한 사금파리로 흩어지는 과정을 두려움이 매번 산처럼 커졌다 눈처럼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편지를 읽으며 바로 떠오른 사람이 있어서 얼른 공유했다. 역시나 반응은 나보다 훨씬 뜨거웠다. 곧 남편의 생일이라며 좋은 팁을 주어 고맙다고 했다. 남편에게 편지를 전한 후, 가마솥에 끓이는 도가니탕처럼 은근한 배려를 깊게 느끼고 찰진 집밥을 먹은 것처럼 힘있고 편지 효과가 꽤 오래 간다고 전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글쓰기 선생인지라 연말에 제자들에게도 가장 감사하고 싶은 사람에게 고마워로 끝나는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단다. 기특한 제자는 고맙습니다라고 끝나는 편지를 한 페이지 가득 써 선생의 눈물을 떨구게 했다.

 

나도 엊그제 남편의 마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아 오누이에게 모든 문장이 고마워로 끝나는 편지를 쓰자고 했다. 정작 아이에게 제안하고 쓰려고 보니 쉽지 않았다. 생일날 아침, 아들이 "엄마는 썼어요?" 라고 묻는데 뜨끔! "엄마도 써야지" 하다가 결국 생일날까지 쓰지 못하고 하루를 넘겼다. 얘들이 쓴 편지를 보니 굉장히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딸은 내 이름을 부를 때 웃으며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저와 체스를 해주어서 고마워요. 태블릿을 충전해주셔서 고마워요. 저의 아빠라서 고마워요고마움을 느꼈던 순간을 세세하게 썼다. 오늘 혹은 어제 고마웠던 일을.

 

낯간지럽지만, 억지로라도 써보니 고마운 마음이 깨알같이 살아났다. 생각했던 거보다 고마운 게 많았다. 긍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난 거다. 남편이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더니만 그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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