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3월 21일부터 봄이다. 칼로 물 베듯이 날짜를 딱 정할 수 있나? 싶었는데,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정말 봄처럼 낮 기온이 18도까지 올랐다. 하얀 분홍 노랑이 꽃들이 한 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피어 올라 봄 분위기를 물씬 낸다. 나무는 겨우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겹게 꽃 피울 준비를 했을텐데 그건 보이지 않고 순식간에 핀 꽃만 보인다. 이문세의 봄바람을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마리타가 정원에 심어둔 구근 식물인 이름 모를 꽃들도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이렇게 환한 봄에 마리타는 병원에 있다. 지난주 10시간의 수술을 했고 지금은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다. 당연히 78세의 연세에 그렇게 심각한 수술을 하고서도 괜찮으리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수술 당일 날, 살 확률이 50대 50일만큼 힘든 수술이라는 소식은 심란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다는 게 이런 심정일까. 그 시간을 마리타는 견뎌낼 수 있을지 무서웠다. 마리타와 한집에 사는 피터의 눈빛이 연일 슬프다. 윗집에 사는 이웃으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다가 쉼 없이 일하는 피터의 점심 도시락을 챙긴다.
금요일엔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서 가져다 드렸다. 아내가 없는 부엌은 온기 하나 없다. 아내가 아프거나 부재하면 혼자 집에 남은 남편은 불쌍하다. 그 반대도 물론 마찬가지일 테지만. 둘이 늘 함께 하다가 뭐든 혼자 하는 슬픔이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와 불을 켠다. 혼자 쓸쓸히 끼니를 때우고 홀로 잠을 잔다. 언젠가 마리타와 같이 외출했던 날 뭐라도 먹을까? 제안했더니만, 마리타는 저녁은 꼭 피터를 기다렸다가 같이 먹는다면서 거절했다.
마리타가 수술하는 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심란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막상 개복을 해보니 상태가 더 심각하고 생각보다 수술이 늦었단다. 수술이 힘겹게 끝난 날, 피터는 마리타가 돌아오면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할 테니 집을 고쳐야겠다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소용없게 될 모양이다. 수술은 어찌어찌 끝났는데 의사를 만나고 온 피터는 울음이 쏟아질 것 같다. 어쩌면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옆지기와 함께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깨가 축 처져서 물기 가득한 눈빛으로 걸어가는 피터를 보면서 깨닫는다.
수술하러 가기 전에 마리타를 만났을 땐 두 다리가 퉁퉁 부었다. 다리에 물이 차고 며칠 전엔 폐에서 물을 1L나 뺐단다. 신경성 관절염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병명은 못 알아듣겠다. 봄 햇살은 이렇게 따사로운데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심경일까. 늙는다는 것은 정말 형벌일까. 늙은 것도 서러운데 아프기까지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2년 반 전 마리타가 내게 나이를 물어서 마흔이라고 했더니만 "너 참 젊구나" 했던 말이 아리다. 내 나이 마흔은 젊은 나이인데 그걸 자꾸 잊는다. 뭐라도 할 수 있는 나이일 텐데 자신감은 자꾸 쪼그라든다. 젊을 땐 젊음을 모른다.
'웃음꽃유진 > life in Schwanewe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장미와 홀룬더블루텐젤리(Holunderblütengelee) (0) | 2019.06.20 |
---|---|
선박으로 보내 온 택배 (0) | 2019.04.12 |
도시락 높이만큼 쌓이는 자괴감 (0) | 2019.03.24 |
행복한 순간은 대단한 날은 아니고 (0) | 2019.03.22 |
세 줄 문장으로 하루 성찰 (0) | 2019.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