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만 해도 우리가 오뒷세이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온라인 카페를 개설한 2016년 11월 6일(독일에 온 지 3개월이 되기 전) 만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물론 수업료를 받는다. 내 존재의 무거움을 위해서. 내 딴엔 재능 기부하는 마음으로 최저 금액을 책정하지만 태린씨와 순영님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진 않았다. 반응으로 봐서는 수업료 이상으로 충분히 만족하리라 믿는다. 책만 읽고 나누는 건 아니고 매주 글도 쓴다. 다양한 형식으로 마음 동하는 대로 진행하는 소모임에서 올해는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그룹톡으로 만나 읽은 책 나눔을 한 시간 반 가량한다. 고로 지난주 일요일이 벌써 8번째고 책은 오뒷세이아다.
자자한 명성대로 책이 두꺼운만큼 8,9월 두 달에 걸쳐 꼼꼼하게 읽자고 계획했다. 오뒷세우스의 모험이 끝나는 12장까지 읽었다. 처음 시작은 힘들었지만 참고하라고 보낸 강대진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 전체적인 맥락을 알고 들이니 훨씬 나았단다. 읽을수록 낯선 신들과 지명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호메로스의 문장이 은근 매력적이라는 고백은 반가웠다. 왜 다들 그리스 고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도 같다고. 그래서 오뒷세이아를 읽는구나 싶고. 혼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572페이지 두께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뿌듯함과 자부심이 든다고.
맨 처음 목표는 내가 12권 중에 4-5권만이라도 정리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조금씩 힘을 모으면 12권 전체를 다 하면 좋을 것 같아서 3장씩 두 분에게 맡겼다. 오히려 과제가 주어지니 책임감 있게 맡은 장을 집중해서 읽게 되고 이해도 더 잘하게 되어서 좋았단다. 두 분이 각자 맡은 분량을 너무 잘해주었다. 내가 나머지 6권을 정리하니 총 12권이 하나도 빠짐없이 채워졌다. 오뒷세우스 귀향, 뒷부분도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다.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오기 전까지 겪는 고난이 지금의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다들 놀라워했다. 음악치료를 공부한 태린씨는 융 심리학에서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가 꼭 나왔는데 이번 기회에 읽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이나 여신들 이야기가 상담을 공부하면서도 중요하게 다뤘던 기억이 났다.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신의 원형을 찾아보는 것에 대한 소감문을 썼다. 태린씨는 군인 가족으로 힘듦이 있지만 어쩌면 그게 자신이 숙명처럼 짊어져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오뒷세우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순영님은 두 가지 생각을 말했는데, 하나는 종교를 갖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고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으며 그때마다 나보다 큰 신적인 존재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음을 고백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거. 오뒷세우스처럼 위기의 순간에 신의 도움을 받되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오뒷세이아 10권>에서 전우들을 모두 돼지로 변하게 만든 키르케에게 가야 한다고 오뒷세우스가 결의에 차서 씩씩하게 말하는 대목에선 순영님은 눈물이 났단다. "하지만 나는 가겠소.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오" 이 부분! 전우들이 이미 당한 재앙이 눈에 보이고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기꺼이 가는 모습에서 교사로서 현주소를 자각하고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야 하는 상황을 연결시켰다.
2년 후의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지금처럼 "글 쓰고 공부하는" 부분이 우리 셋의 공통분모였다.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 2년 후의 모습을 자꾸 생각해볼수록 지금 뭘 해야 할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거 같다. 난 올 하반기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고 2021년엔 산토리니 섬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열대 과일을 실컷 먹고 화이트 와인을 마시자고. 한참 전에 생각했지만 미처 이야기하지 않았던 내 소망을 공유한 셈이다. 태린씨와 순영님 물론 크게 환호했다.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면서. 우리들 중 태린씨 아이가 현재 4살로 가장 어리니까 2년 뒤엔 그 아이도 엄마 떨어질 만큼 자라 있겠지. 우리 셋의 지적 근력이 단단해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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