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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life in Schwanewede

남매의 자발적 쓰기

한글 공부 겸 한국사 공부를 남매와 시작을 했다가 흐지부지된 게 언제더라.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한국에 살면 엄마가 굳이 이렇게 하지 않겠지만 우린 현재 특수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시늉이라도 해보자고 각오만 다지고 몇 번 하다 관뒀다. 대신 뭐든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우는 편이 빠르다. 올 초부터 아들과 딸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쓴다. 딸은 급기야는 책을 쓴다면서 벌써 노트 몇 권을 끝냈단다. 아들은 이영도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중 <드래곤 라자>를 탑으로 뽑는다. 시리즈를 e북으로도 사줬는데 종이책으로도 갖고 싶다고 해서 지금 비행기 타고 오는 중이다. 캐릭터를 구상하고 서로 읽어주기도 하면서 평도 하고 둘이 그럴듯하게 논다. 

 

아들은 유명한 작가가 되면 매일 아침 새벽마다 글 쓰는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걸 꼭 잊지 않겠다는 찡한 말도 한다. 엄마는 요즘 뭐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진 않는다. 설렁설렁 쓰는 엄마는 찔린다. 엄마의 졸작에 자식이라도 작가라고 자랑스러워하니 황송. 남매가 쓰는 일에 열심을 내는 모습이 오히려 감동이다. 딸은 절대 보여주진 않지만 벌써 이야기 노트 몇 권을 끝냈단다. 술 술 써지는 날도 있는데 엄청 재미있다면서. 어떤 날은 하루 10페이지는 썼다고 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만들기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것처럼 쓰기도 하나의 놀이다. 누구 말대로 글 쓴다고 다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골프 좀 친다고 프로골프 언제 할 거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아들에게 컴퓨터 대신에 노트북을 사준 것도 글을 쓰겠다고 해서다. 지난주부터는 노트에 구상했던 판타지를 웹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산 노트북은 자판이 알파벳이라 한글 자판 연습을 따로 했다. 그러더니 뚝딱 글 한편을 써서 올린다. 맞춤법 교정하는 방법과 어느 글씨체가 읽기에 좋은지 줄 간격 등의 팁을 알려줬더니만 역시 엄마 최고라고 좋아한다. 글 한편을 완성하고 업로드하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면서 엄마가 왜 글 쓰는지 알겠단다. 게임의 3요소인 몰입, 성취감, 관계를 쓰면서 느끼면 좋겠다. 한글 공부가 턱없이 부족한 딸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자발적으로 글을 쓰니 조금은 안심이다. 대신 맞춤법은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 가끔은 엄마가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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