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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유진/life in Schwanewede

체리 묘목에서 희망이 싹튼다

 

체리 묘목을 심었다. 세상에 그것도 두 그루나! 슈토프 지금 사는 집은 살면 살수록 아주 마음에 든다. 주말 부부 하면서 남편이 혼자 에어비앤비에 묵을 때 어렵게 구했다.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면서 우리 가족이 살기에 딱 좋은 집이라고 남편은 꼭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까지 통과, 우리에게 세 주기로 결정한 후에 애들과 함께 집을 보러 왔는데 짐이 너무 많고 어린아이가 사는 집답게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좋은 집이라는 걸 알아본 남편의 안목은 지금껏 칭찬이다. 이렇게 넓고 쾌적한 공간이라는 걸 살면서 진가를 알게 되다니!

 

딱 하나 단점을 꼽으라면 정원이 안채에서 좀 멀다. 내가 원하는 건 테라스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길 바랐는데 주인집에서 나오는 길에 우리 집 정원이 훤히 보인다. 주인집 2층 애들 방에서도 물론 다 보이고. 반대로 우리 집 어디서도 정원은 보이지 않는 구조다. 정원을 등지고 지은 집이라 집 밖으로 나와 차고를 지나야 정원이니 아무래도 덜 가게 된다. 빨래를 널거나 가끔 아들이 잔디를 깎을 때 들여다본다. 그러다 봄이 왔다. 봄엔 푸성귀를 심어야지. 밭에서 막 따온 상추의 보드라움을 잘 아니까. 제일 먼저 시금치 씨앗을 일주일 전에 딸과 뿌렸다. 벌써 싹이 돋는다. 그 뒤에 토마토 모종 두 그루를 심었다. 다음 주엔 감자를 심을 거다. 

 

잔디를 빙 둘러서 가생이에 텃밭을 일구도록 되어 있다. 그전엔 관리되지 않은 이름 모르는 나무들과 꽃들이 무성했다. 그렇다고 우리도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스타일도 아니라는 걸 주인집 올리버가 파악했는지 풀 뽑기 귀찮지 않도록 나무 부스러기를 깔아줬다. 그때 한쪽면은 텃밭으로 쓸 요량으로 남겨두라고 했고. 10년쯤 된 과실나무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꽃만 피는 나무보다는 열매가 열리는 게 좋으니까. 슈바니비데 살 적에 뒷집에도 앞집에도 체리나무가 있었다. 아름드리 체리나무에선 봄마다 하얀 꽃이 눈부시게 폈다. 그저 실컷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부턴가 보다. 집을 사면 꼭 오랫동안 흠모하던 체리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올초 내가 바라는 모습(2년 뒤)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마음에 품고 있거나 글로 써두면 무의식이 그 방향으로 저절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남편한테도 우리 체리나무를 심자, 묘목을 어디서 사야 하지, 이런 얘기를 아무 생각 없이 한 날 체리 묘목을 만났다. 

 

 

어젠 우연히 알디를 갔다. 자주 가지 않는 마트다. 계산하기 바로 직전에 남편이 체리나무 묘목을 발견한 거다. 마트에서 이런 것까지 팔 줄은 몰랐다. 물론 알디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가구부터 책, 문구류, 컴퓨터까지 오만가지가 매번 교체되면서 판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체리묘목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가격이 3.99유로로 엄청 저렴하다. 체리뿐 아니라 사과, 배, 밤까지 있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있어도 몰랐을 것이 눈에 딱 띈 거다. 작은 과일 묘목이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아서 "이거 진짜 체리나무야?" "이렇게 작은 걸 심으면 정말 체리 먹을 수 있는 거야?" 의심하다가 감탄하면서 한 개를 더 샀다. 체리도 신맛과 단맛으로 나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당연히 단맛으로 골랐다. 최소 3m는 떨어뜨려서 심으라고 돼있다. 크게 자랄 걸 염두하면 당연히 그래야지. 나무는 처음 심는 거라, 그러고 보니 집엔 삽도 없다.

 

비료랑 비옥한 흙을 사러 나가는 남편이 산책에서 돌아오는 주인집 올리버를 만났단다. 체리 나무를 심을 건데 삽 좀 빌려달라면서 나무 심는데 필요한 것을 사러간다니까 굳이 필요 없다고 자기 집에 다 있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다. 소란스러워서 나가보니 그새 올리버가 삽을 들고 우리 집 정원에 서있다. 진디 중앙 양 옆으로 적당히 떨어뜨려 두 곳의 땅을 파고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묘목을 세운 후 흙으로 덮으면 끝이다. 쉽게 끝났다. 게다가 나무는 두 그루를 심는 게 바람 불면 꽃가루가 날려 수분도 잘 되어 좋단다.

 

앞집의 Purebure 사장도 와 있다. 자기 집에 20년 된 체리나무가 있다면서. 이제야 체리 나무답다면서. 와, 20년이나. 잠시 실망했다. 그래도 싹이 돋고 가지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겠다. 올리버 부인 라모네는 체리 열리면 자기한테도 나눠주란다. 당연하지! 이웃과 나눠먹을 정도로 체리가 주체할 수 없이 열리면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라모네집엔 재작년에 심은 체리에서 작년에 체리 한 개를 따먹었다면서. 남편은 체리나무를 심었을 뿐인데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 무성해질 나무를 상상하면. 그건 나도 그렇다. 이사하고 첫 번째 봄에, 더 늦기 전에 심은 일은 참 잘한 일이다. 

 

1월 8일에 쓴 글, 2년 후 바라는 모습 중 일부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푸른 잔디와 체리 나무는 부부 침실에서 바로 보이고 부엌과 연결된 테라스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안쪽에 숨어있어서 정원 생활을 즐긴다. 벽난로는 겨울엔 낭만이 가득하고 여름엔 우리 식구가 배불리 다 따먹고도 남을 만큼의 체리가 열린다. 체리꽃이 벚꽃처럼 휘날리는 봄엔,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나누며 작은 음악회를 열어 풍류를 더한다. 열흘 가는 꽃 없다더니 흩날리는 꽃송이를 보며 덧없는 인생을 논하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기억한다. 숲 진입로가 오분인 곳이라 산책하기 용이하고 애들이 장성해서 독립을 하고 난 후에도 계속 살아도 좋을 애정 돋는 공간이다.